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Nov 03. 2022

덕질도 하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저는 '입덕' 하기도 전에 '졸덕' 했습니다

누군가를 심하게 좋아한 적도 그렇다고 혐오한 적도 없다. 심각하게 무언가에 빠져본 기억도 거의 없다. 천성이 그런 것인지 일정한 선을 통과할 즈음이면 뇌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는 제어 시스템이 멈춤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이 나이 먹도록 그 대상이 사람이든 아니든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적이 없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아내가 첫사랑(뜨끔)이고 그마저도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아내를 온몸으로 방어하다가 실패하여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살고 있을 뿐일 만큼 이성이 강한 편이다.(뇌피셜)


평생 이런 성향을 안고 덕질과는 거리를 두고 살다 보니 가끔은 진정한(이라 쓰고 과도한 이라 읽는) 덕후들의 모습이 이해 안 될 때가 있다. 얼마 전 유튜브 쇼츠 영상을 통해 모 트로트 가수가 콘서트 이후 차량 이동을 할 때 그 차량을 따라 한 무리의 4~50대 아줌마들이 괴성을 지르며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볼 때 그것은 심각한 체력 낭비이자 사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행위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줌마들, 집에 밥은 해놓고 나온겨?' 따위의 조선시대 사고방식을 고수할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좋아하는 가수가 있고 그 가수가 차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니 반가운 마음에 그럴 수 있다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공공장소에서 이목을 끌만큼 그런 행동을 했었어야 하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물론, 뭐 그 정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냐고 하시는 분들 당연히 계실 것이고 그 또한 일부 공감한다. 당장 내 주변만 둘러봐도 어떤 정치인에 빠져 수백 km의 거리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분이 참석하는 행사마다 빠짐없이 참석하는 분도 봤고 선거철만 되면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밀착 마크에 가까울 정도로 매일 따라다니며 특정 후보에 목매는 분들도 심심찮게 봤으니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 한복판에서 소리 좀 지른 것쯤이야 애교이고 약과일 수도 있겠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 레이프 가렛이란 가수가 내한했을 때 무대 위에 있는 가수를 향해 자신이 입고 있던 빤쓰를 벗어던진 사람도 있었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한동안 방송 생활을 중단하기까지 했던 개그맨 정형돈 씨 같은 경우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틈을 타, 자칭 팬이라는 어떤 아줌마가 본인의 중요 부위를 손으로 꽉 움켜잡았던 경험을 한 이후부터 대인공포증에 시달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 모두가 과도하고 삐뚤어진 팬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과연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다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을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상실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그 대상이 사람일 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얼마 전 방송을 통해 고정 프로그램도 하나 없고 유튜브를 통한 수입도 수개월 째 0원인 모 개그맨이 피규어 수집에 목숨 거는 것을 봤었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듯 그분이 어떻게 살든 내가 알 바 아니지만 고정적인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몇 십만 원을 호가하는 피규어를 아내 눈치 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구매하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직까지 덕질이라 일컬을 정도로 어딘가에 심각히 빠져본 적이 없다. 야구광이었던 어린 시절, 지역에서 대붕기 고교 야구가 열릴 때 아침 9시에 입장해서 밤 12시가 넘어 집에 간 적이 있고 전 국민이 한ㆍ일 월드컵으로 기억하는 2002년의 어느 늦은 가을밤, 삼성 라이온즈가 역사적인 첫 한국시리즈 우승하던 그날 고향 땅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이 그나마 과도한 덕질에 가까운 기억이라면 기억이랄까 그 외에는 그렇게 살지도 않았고 그렇게 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적당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적정선을 벗어나는 순간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내가 늘 주장하듯 적극적인 구애가 선을 넘는 순간 스토킹으로 변질되는 것처럼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제까지 지켜본 바로는 진정한 덕후는 소리 없이 강했다. 내 주변에서 덕질의 끝판왕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남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비밀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통제할 범위를 넘어선 부분이라 이런 말 하는 것 자체가 오지랖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덕질을 하더라도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적당히 즐기는 수준에서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옛날 내가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만 흘렸던 것처럼.



<쿠키 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 가수와 콜라보해서 만든 김밥을 구매하는 여성 고객이 있었다. 이미 다른 곳에서도 탈탈 털어서 온 것인지 봉지 한가득 그 김밥이 들어 있었다. 가끔 특정 연예인 관련한 상품이 출시되면 투어 하듯 점포를 돌며 일괄 구매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너무 궁금해서 그거 다 드실 수 있겠냐고 고객에게 물었더니 그건 뒷문제고 일단은 응원하는 마음에서 왕창 사고 보는 거란다. 내가 참...... 음원 사재기는 들어봤어도 김밥이나 도시락 사재기는 또 처음 들어본다. 그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다음부터는 그런 사람 오면 쓸데없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무서운 아줌마들이라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