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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Dec 08. 2022

이 아이는 자라서...

라떼를 입에 달고 산다고 합니다

밥상에 앉아 반찬투정이라도 할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것이 아버지의 일장연설이었다. '이런 쌀밥을 어디 구경이라도 했나, 한 끼라도 제대로 먹으면 다행이지. 오죽하면 굶어 죽지 않으려고 군대 입대를 하고 그랬겠나. 일단 군대 가면 매 끼니 꼬박꼬박 나오기는 하니까.'로 시작된 아버지의 라떼 시리즈는 그 순서를 외울 수 있을 정도로 항상 정해진 레퍼토리대로 흘러갔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학교가 웬 말이고. 돈 들여서 학교도 보내주고 너거는 행복한 줄 알아라. 공부 그거 뭐가 그리 힘드노? 읽고 쓰고 외우고 모르는 거 있으믄 또 읽고 쓰고 외우고 반복하믄 되지. 너거는 다 배가 불러서 그런 기다. 하여간에 요즘 애들은 정신 상태가 글러 먹어가지고..... 누굴 닮아서 애들이 이리 나약할꼬. 내가 너거 나이대엔 산을 몇 개나 넘어 내 키보다 훨씬 높은 나뭇짐을 지고 십리 길을 걸어 장터에 내다 팔고......"

이렇게 아들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표현들이 나오면 아버지의 라떼 스토리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했다.


당시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옛날 옛적 캐캐 묵은 소리를 하시냐고 반발도 해봤고 나도 나름의 고충이 있노라고 항변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게 아버지는 급변하는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시대 유물 같은 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독립을 하고 집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의 연설은 멈출 줄 몰랐고 그 시달림 속에 훗날 어른이 되더라도 그런 모습만은 절대 보이지 않으리라 나는 다짐에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듯 내 다짐은 강산이 네 번 바뀔 정도인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누가 보더라도 내가 살던 시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게 사는 아이가 터무니없는 말을 할 때면 내 입에서는 항상 같은 말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진다.


"야 임마!! 우리 때는 말이야. 김밥은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연례행사 때나 먹는 거고 짜장면은 졸업식 아니면 구경도 못했어. 너 지금 바나나 주면 맛없다고 버리지? 나는 바나나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옷 살 돈이 없어서 큰 아빠, 작은 아빠가 입던 옷 물려받아서 입었고 가방도 국민학교 입학할 때 한 번 새 가방 샀지 그 뒤로는 전부 물려받아서 썼어. 뭐?? 가방이 무겁다고?? 요즘은 교과서도 날씬하더만. 그마저도 학교 사물함에 다 넣어두고 다니면서 뭐가 그리 무겁다고 지랄이야? 나 때는 말이지. 40분 넘게 걸어서 학교 가고 그랬어. 가끔 어깨가 너무 아파서 버스라도 타면 머리는 왼쪽에, 다리는 오른쪽에, 몸통과 가방은 저 멀리 허공에 둥둥 떠다닐 정도로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서 개고생 했단 말이야. 어디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그럴 때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딸아이는 만사 귀찮은 표정과 함께 단 한마디로 모든 걸 정리한다.

"이제 그만~~~ 아빠 지금 그러는 거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이라는 거 알아?"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다가 딸아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면 내가 방금 무슨 말들을 했는가 후회가 막심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들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고 그와 함께 오래전 내 아버지 또한 나를 바라보며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러셨을까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가 딸아이에게 그랬듯 분명 아버지께서도 아들 잘 되라는 뜻에서 당신의 경험을 말씀하시려던 것인데 세부적인 예시를 들다가 샛길로 빠졌을 뿐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떼 스토리=전형적인 꼰대'라는 등식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비교를 하며 이야기 속에 과시욕이라든가 무용담, 고생담 같은 것들이 들어가며 처음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순간부터 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잘 정리된 라떼 시리즈는 순기능을 가져올 수도 있다. 여전히 꼰대 기질을 갖고 있긴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는 그 순기능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며칠 전 기말고사를 치른 딸아이가 눈물범벅이 되어 집으로 온 적이 있다. 나를 닮아 쓸데없는 승부욕이 강한 딸아이는 자신이 준비하고 기대했던 것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자 자기감정에 못 이겨 걸어오는 내내 울며 집으로 온 것이었다.


아내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았던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들어오는 딸아이를 안아주며 예전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차마 집으로 가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했던 이야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집안 역사상 최저 점수로 기록되고 있는 중2 때 기술 시험 점수 이야기, 그리고 대학 1학년 때 호기롭게 영문과 졸업반 학생들만 듣는다는 영어 수업에 들어갔다가 정확히 62점을 받고 성적표에 F를 기록했던 얘기들을 해주며 인생이란 큰 그림으로 볼 때 작은 점도 되지 않을 사소한 일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조직에 속한 직장인이 아닌 나는 꼰대 기질을 발휘할 곳이라곤 딸아이가 유일하다. 과묵한 성격(키보드 워리어 기질은 좀 있습니다만)에 더해 은둔형 외톨이 기질까지 가진 내가 조직생활을 한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꼰대 짓을 할 확률은 극히 낮지만 그 희박한 확률마저 원천적으로 봉쇄해서 0으로 수렴하게 만든 자영업이란 특수성이 이럴 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만 본능보다 강한 이성으로 그것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누구나 꼰대 기질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현재보다는 과거에 집착하고 유독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분들은 다른 분들에 비해 꼰대 기질을 발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본다. 그런 분들이 부디 라떼 스토리를 적절히 사용해서 꼰대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나처럼 밖에 나가서는 아예 입을 다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덧붙이는 글>

몇십 년 후 내 딸이 내 나이 정도 되어서 이런 꼰대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잠깐 상상을 해봤었다.


'야~~ 엄마가 어릴 땐 말이지. 거추장스럽게 휴대폰이라는 걸 손에 들고 다녔거든. 상상이 안되지? 그리고 예전엔 말이야 음식 배달이란 게 있었는데 주문 한 번 하면 도착하기까지 30분, 어떨 땐 1시간 가까이 걸리고 그랬어. 요즘은 얼마나 좋니?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식탁 위에 음식이 5분 내로 다 차려지는데..... 아 맞다. 온라인 쇼핑이란 것도 있었는데 주문하고 그다음 날 새벽에 배송되는 걸 로켓이 어쩌고 저쩌고 엄청나게 빠른 걸로 여겼던 적도 있었어. 지금은 주문하면 늦어도 1시간 내에 오잖아. 세상 참 좋아졌지. 그런데 요즘 애들은 너무 편하게만 살아서 그런지 그 고마움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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