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Dec 15. 2022

그게 자축(自祝)이야? 그게 자축이냐고?

우리 조금은 솔직해집시다

10여 년 전으로 기억한다. 모 사진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아내의 생일을 축하해달라는 글이 생뚱맞게 올라온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사연은 이랬다.


저희는 얼마 전 결혼한 신혼부부입니다. 두 사람 모두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님이나 친척의 도움은 물론이고 변변한 친구조차 없는 형편입니다. 이제 잠시 후 날짜가 바뀌면 결혼 후 맞는 아내의 첫 생일인데 저는 야간에 일을 하는 직업에 종사하기에 함께 있어줄 수도, 곁을 지키며 축하를 해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 홀로 쓸쓸하게 생일을 자축하고 있을 아내에게 여러분께서 문자로 축하 메시지 한 통씩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30년 가까이 외롭게만 살았던 아내에겐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아내의 전화번호는 010-XXXX-OOOO입니다.


그 사연이 실제인지 글쓴이가 가공해낸 창작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많은 회원들은 그 글에 댓글로 축하인사를 남겼고 일부는 글쓴이의 바람대로 자정이 되자마자 축하 문자를 보냈다. 심지어 몇몇은 힘내라는 메시지와 함께 꽃을 선물했다는 분도 계셨고 두 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며 케이크 교환권을 보낸 분도 계셨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낚시성 글에 모두 낚인 거라 주장하기도 했지만 다음날 날이 밝은 후 글쓴이가 수많은 축하 문자를 캡처한 사진이 담긴 새 글을 통해 아내가 감동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후기를 전하자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내게 '자축'이란 단어는 지금까지도 아프고 애잔한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자기에게 생긴 좋은 일을 스스로 축하한다'는 사전적 의미만 보더라도 그 속엔 기본적으로 외로움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SNS를 통해 올라오는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 이게 자축인지 자랑인지 헷갈리는 희한한 광경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럭셔리한 호텔에 가서 테이블 위에 와인을 올려놓고 화려한 뷰 앞에서 야시시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거나 굳이 해외에 나가서까지 자축을 한다는 사진이나 영상들을 올리는 걸 보면 그 속에 들어 있는 과시욕 같은 것이 느껴져 심사가 뒤틀린다. 물론 자축이라고 해서 어두운 방안에 촛불 하나 켜놓고 청승맞게 눈물 뚝뚝 흘리며 울음 반 노래 반의 축하송을 부르는 처절한 퍼포먼스를 펼치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래전 지인 한 분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하나에 달린 여러 댓글들에 상처를 받은 그분은 내 공간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글도 못 쓰냐는 주장을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위로를 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동원해가며 많은 노력을 했으나 끝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분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던지고 말았다.


"저는 본인만의 공간에 쓴 글은 일기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읽으라고 글을 쓰는 순간 그건 자신의 글이긴 하지만 또한 더 이상 자신의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호의적인 댓글이 달릴 때는 즐길 대로 즐겨놓고 악성 댓글 몇 개 달리는 순간 내 공간 운운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발상 아닙니까? 일단 던져놓고 반응 좋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난 반응에는 내 공간에서 당신이 왜 이래라저래라 하냐고 따진다면 그게 앞뒤가 맞다고 생각하세요?"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자축도 마찬가지다. 돈지랄을 하든 혼자서 지지리 궁상을 떨든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걸 외부로 공개하는 순간 더 이상 진정한 의미의 자축은 퇴색되는 거라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떳떳하게 '나는 지금 자랑 중입니다.'라고 하든가, '주변에 축하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러는데 제발 좀 축하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자축이란 혼자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거다. 그게 그동안 자축할 일도 없었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며 50년 넘게 살아온 내 생각이다. 오늘따라 허재 형님의 "이게 블락(block)이야? 이게 블락이냐고?" 영상이 보고 싶은 것은 그냥 기분 탓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