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목소리가 참 좋더라 이 말이지
거의 1년 가까이 책장에 누워 이제나 저제나 간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책을 펼쳤다. 편의점 업계의 특성상 성수기라 할 수 있는 여름을 그렇게 보내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브런치북을 만들기 위해 지난 글들을 돌아보느라 가을을 또 보내고, 그렇게 한 해를 떠나보낸 뒤에야 조금은 여유로운 상태에서 편한 마음으로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이경 작가의 ≪작가의 목소리≫는 마누스 출판사에서 만든 목소리 시리즈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그 뒤로도 연지 작가의 ≪배우의 목소리≫가 출간 되었으며 그다음 후속작으로는 앞으로 내가 쓸 '츤데레 남편의 목소리'라든가 '불친절한 뚱땡이 사장의 목소리' 정도가 되었으면 하는 처절하고 발칙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에 헛소리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기대가 컸던 탓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동안 나도 모르게 이경 작가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에 스며든 탓일까? 이번에 소개할 ≪작가의 목소리≫는 전작인 ≪난생처음 내 책≫에 비해서는 매력이 조금 덜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봤자 아빠가 좋으냐 엄마가 좋으냐의 선택만큼이나 무의미한 비교와 우열을 가리는 행위가 되겠지만.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냥 '이경이 또 이경 했네' 정도가 되겠다.
도입부 '들어가는 글'만 읽어도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인 이경 작가답게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소재와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코 무겁지 않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자기 자랑과 자신의 책 홍보와 하고자 하는 말은 다 하는 확고한 신념까지 적절하게 버무려 표현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아마 처음 이경 작가의 글을 접하는 이들이라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뭐 이런 '병맛'같은 놈이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이 책은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이 돋보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제1 장 작가의 헛소리에서 쓴소리와 목소리를 넘어 제4 장 단소리에 이르기까지 크게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용을 놓고 봤을 때엔 굳이 그런 구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경계선을 넘나들며 글쓰기 전반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의 주의사항까지 다룬다. 그렇다고 이 책을 작법서로 봐야 하는 것일까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글을 쓰다 보면 접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작가 개인의 주장을 말하지만 결국 판단과 마지막 선택은 읽는 이가 할 수 있도록 여운을 남겨둔다. 책 표지에서도 강조하듯 그 점이 이 책을 단순한 작법서가 아닌 글쓰기 에세이로 봐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첫 장 「작가의 헛소리」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필사와 합평, 문체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내 생각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놀라웠고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있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점인 비판적 사고에 대해 쓴 글을 읽을 때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작가는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문장을 발췌하는 수준에서 끝내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로 확장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부분을 읽다 보니 언젠가 내가 쓴 리뷰에 달린 댓글 하나가 생각났다. 나름 최선을 다 해 쓴 리뷰였기에 최소한 악플이 달리는 일은 없으려니 생각했던 그 글에 '책 내용에 대한 부분이 많이 부족하네요. 목차를 사진으로 찍고 중간중간 책에 들어 있는 문장을 인용하거나 사진으로 남겨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는 댓글이 달렸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굴하게 꼬리 내리며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겠노라 답글을 달긴 했지만 그 댓글을 쓴 사람은 내 리뷰를 보러 온 것인지 작가가 쓴 책의 줄거리를 날로 얻어먹기 위해 온 것인지 그 속셈을 알 길이 없었다. 간혹 보면 사진으로 도배된 무성의함의 극치를 달리는 리뷰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분은 그것을 원한 것이었을까?
이런 무성의함은 비단 리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늘 같은 방식, 비슷한 구성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분들이 주로 쓰는 무분별한 남의 글 인용을 볼 때마다 과연 저 사람은 책을 제대로 읽기는 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글에 억지로 끼워 맞춰 넣기 위해 미처 소화되지도 않은 문장을 억지로 끌고 와서 붙여 넣기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이경 작가가 이 부분을 정확히 짚은 것으로 보였다. 서평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문장수집'이라는 이경 작가의 표현대로 단순한 발췌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칭찬에 자만하지도 않아야 하고 지적에 실망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 '글쓰기는 자신감의 균형이 중요하다.'라는 문장과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정해진 비법 따윈 없고 각자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두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 주변의 반응에 휘둘려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들은 적당히 걸러서 보면 된다. 이경 작가의 말대로 결국 글쓰기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필사를 하면 글을 잘 쓴다고, 글모임에 가서 실력이 늘었다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해도 그 방법이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누군가는 매일 글쓰기만이 정답이라고 하지만 그 방법 또한 100% 정답이 아니듯 각자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뒤로 갈수록 동력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책은 전반적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이경 작가 글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언어와 간결한 문장 구성으로 되어 있어 읽기에도 크게 불편함이 없다. 노안이 와서 제대로 집중하기 힘든 나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이니 집중해서 읽는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리라 본다.
이 책은 글쓰기를 갓 시작한 초보보다는 발걸음을 떼긴 했지만 어느 순간 방향을 잃으신 분들, 특히 그중에서도 자신감을 잃어버린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 분들이 책 속에 담긴 내용을 읽고 깨닫고 덤으로 이경 작가의 문체를 잘 연구하여 본인만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