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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Feb 07. 2023

어떻게 글을 쓰냐고 물어보셨나요?

여기저기 널브러진 조각을 이어 붙이듯 씁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잊을만하면 듣는 말이 있다.

"쉽게 읽히길래 쉽게 쓰시는 줄 알았어요."

마치 신내림을 받은 듯 타이핑하는 속도가 내 생각을 미처 따라잡지 못할 때가 간혹 있긴 하지만 그건 극히 드문 일이고 없는 시간 쪼개서 쥐어짜듯 글을 쓸 때가 대부분이다. 


언젠가 한 번,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인 지인께 내가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10개의 글을 쓴다면 순서대로 쓰는 게 아니라 각각의 글 10개를 펼쳐놓고 조금씩 살을 붙이듯 쓴다는 내 말에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며 힘들고 어렵더라도 글 하나를 마무리하고 다음 글로 넘어가는 게 어떠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내가 그분께 말씀드렸다. 내가 그걸 몰라서 그렇게 하겠냐고, 내게 주어진 환경에선 이게 최선인 것 같다고. 내 말을 다 들으신 그분께서는 안타깝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하루 13시간,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나와서 일할 때뿐이다. '퇴근 후 글쓰기' 따위는 애당초 불가능에 가깝다. 집에 가서 아침도 점심도 아닌 어중간한 식사를 하고 뒷정리를 하면 어느덧 시곗바늘은 오후 3시를 가리킨다. 늦은 밤 출근을 위해서는 아무리 늦어도 4시쯤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에 그 짧은 시간 동안 글을 쓴다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다. 기껏 생각나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으면 메모장에 짧게 기록만 해둘 뿐이다.


사실 출근 후에도 제대로 글을 쓸 환경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 새벽 시간을 이용해 들어오는 상품을 검수하고 정리하고 진열하는 것에만 꼬박 2시간은 걸린다. 말이 쉬워 2시간이지 그 시간 동안 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하다 보면 4~5시간은 그냥 지나간다. 겨우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새벽 다섯 시에서 직장인들의 아침 출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여섯 시까지 한 시간 남짓인데 그마저도 아예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니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할 시간은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남들과는 많이 다르다. 물건을 정리하거나 손님이 상품을 고르는 그 시간을 이용해 어떤 문장을 만들 것인가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잊기 전에 한 줄씩 갖다 붙이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에 발행한 글인 '개학을 기다리는 아빠가 몇이나 있을까'라는 글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처음 그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방학만 하면 되풀이되는 풍경에서였다. 언젠가 한 번은 써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구상에 들어간 것이 꽤 오래전이었다. 그때부터 차곡차곡 데이터를 수집하며 로드맵을 그려 나갔다. 도입부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표현하면 글을 읽는 이들이 내가 본 것처럼 생생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 있을까, 마지막 마무리는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등을 미리 그려놓고 거기에 맞는 단어와 문장, 풍경 묘사, 여러 가지 감정들을 며칠에 걸쳐 하나씩 집어넣어 가며 조립하듯 쓴 글이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저 보잘것없는 글이겠지만 그 글 한 편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한 노력의 시간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길었다. 스스로 내 글을 평가했을 때, 그렇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만약 내 글이 쉽게 읽힌다면 맞는 조각들을 찾아서 뗐다 붙이는 그 반복되는 과정이 결코 짧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끔 다른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글감이 없어서,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글쓰기를 게을리하는 분들을 심심찮게 본다. 그분들께 정말 글을 쓸 시간이 없는지, 글감이 없는지 묻고 싶다.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단시간에 너무 차원이 높은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도 묻고 싶다. 그건 말 그대로 욕심일 뿐이다.


대학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후배로부터 한 여자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첫인상도 괜찮았고 그다음 만남에서도 꽤 좋은 분위기였기에 인연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갔는데 그때부터 그녀는 회사에서 하는 일이 많이 밀렸다는 핑계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는 이유로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었었다. 그때만 해도 순수했기에 그게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란 것을 몰랐던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아내를 만난 이후에야 그걸 깨달았었다. 퇴근 후 집에 갔다가도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나를 보기 위해 가게에까지 찾아왔던 아내를 보고 나서야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게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남녀 간의 연애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듯 글쓰기도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하루 24시간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글을 쓰면 된다. 그렇게 해도 여유 시간이 없다면 기존에 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를 포기하고서라도 글을 쓰면 되고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 글을 안 쓰면 된다. 결국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문제라는 뜻이다.


나는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1순위로 두고 남편과 아빠로서의 역할을 2순위로 둔 그 이외에 남는 모든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을 쓸 시간 자체가 거의 없기에 부득이하게 내린 결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매몰되어 살지는 않는다.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고 독서도 하고 최소한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다 한다. 다만, 그런 여가 활동 중에도 괜찮은 대사나 문장이 있으면 언젠가는 그것을 이용해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머릿속 안테나가 항상 글쓰기 쪽으로 향해 있을 뿐이다. 


누군가 내게 어떻게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건 나르다가 허리가 아프면 잠시 자리에 앉아 쉬면서 한 줄, 청소를 다 끝내고 개운함이 전해질 때 그 쾌감을 담아 한 줄, 손님과 짧은 대화 중에 생각나는 문장이 있을 때 잠시 기다렸다가 손님이 가신 후 한 줄, 그렇게 한 줄씩 이어 붙이며 탑을 쌓아가듯 한 편의 글을 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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