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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Feb 09. 2023

365일+365일, 또다시 2월 9일

나를 온전히 바라보기까지 걸린 2년이란 시간, 그리고 그녀

그녀는 자기 자신을 냉정한 독자이자 훌륭한 스승을 뜻하는 '냉독훌스'라 칭했다. 2년 전 1월 30일, 세 번째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가 쓰디쓴 탈락의 경험과 함께 식음을 전폐하 의기소침해 있는 내게 처음 손을 내밀어준 이가 그녀였다.

"그러지 말고 오빠, 이번에 제출한 글 말이야. 안 지웠으면 나한테 좀 보내줄래요?"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고 쓰는 게 글이라지만 그 말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불특정 다수가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글과는 달리 일대일 면접 보듯 단 한 사람에게, 그것도 나름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내 글이 난도질당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몇 차례의 실랑이가 오고 간 후 마지못해 메일을 보냈다.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긴 했지만 행여 입에 발린 소리만 늘어놓을 것이 우려되어 느낀 감정 그대로 전해줄 것을 몇 번이나 강조하고 다짐을 받은 후였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녀의 칼날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눈부실 정도였고 한 번 시작된 칼춤은 거침이 없었다.

"오빠, 글 하나만 놓고 보면 큰 문제는 없어요. 그런데 나 같아도 이런 글은 안 뽑을 거 같아."


뭐라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화살처럼 날카로운 말들이 연이어 내 가슴에 날아들었다.

"너무 뻔하고 흔한 얘기만 늘어놨잖아. 그 나이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을 단순히 글로 썼을 뿐인데 오빠 같으면 그걸 뽑고 싶겠어?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글인데? 평소 오빠가 쓰는 글 특징이 뭔지 알아요? 노골적으로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도 재미있는 글, 아픈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무심한 듯 시니컬한 글, 그게 오빠 글 매력인데 그게 하나도 없어. 다른 사람이 쓴 글 같단 말이야."


'하...... 씨발'

나도 모르게 짧은 욕이 튀어나왔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반박할 수 없는 정확한 사실이었기에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내게 그녀는 뭔가 있어 보이려 애쓰지 말고 블로그에 쓰던 것처럼 가볍게 쓰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에서 유독 '가볍게'라는 세 음절이 눈에 들어왔다. 탈락할 때마다 나를 괴롭혔던 브런치팀의 '진솔한'에 이어 또다시 과제를 부여받은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최대한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진솔한 글을 가볍게 쓰면' 된다는 각오로 글을 썼다.


이후 열흘에 가까운 시간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인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집과 가게만 오가던 내가 쓸 수 있는 소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나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해봤자 가게를 찾는 고객들과의 에피소드, 성향이 정반대인 아내와의 갈등,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일 뿐인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오랜 고민 끝에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쓰기로 했고 세 편 정도의 분량이 나왔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제출했다. 탈락했을 때 썼던 글이 추상적이고 정답에 가까운 글이었다면 그때 썼던 글들은 회고록 형식의 구체적인 글이었다. 다만,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했기에 자칫 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급적이면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당시의 감정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그날이 2021년 2월 9일이었다. '다시 탈락하면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니 미련 없이 접자'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오전 10시쯤 제출하고 당일 오후 늦게 바로 메일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깨달았다. '비움'이란 것이 '채움'보다 더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어떻게든 과시하기 위해 소개와 목차에 온갖 경력을 다 동원해서 치장했던 나였다. 그러고도 세 번 연거푸 떨어진 후에는 모든 것을 지우고 오로지 세 편의 글에만 집중했었다.


그때의 깨달음은 브런치에 들어온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딱히 내세울 만한 간판이나 타이틀도 없지만 철저하게 글 하나만으로 정면돌파 하겠다는 각오로 작가소개란을 쓸 때 직업도, 소개도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드러내기로 했다. 기타 이력과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와는 무관하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명백한 사실만 썼다. 그게 내 글을 읽을 독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었던 2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어느 정도 성장했고 내 글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서 적어도 글이 퇴보하지는 않았고 스스로 판단하기에 이제야 가식적인 모습을 벗어던졌다는 것이다. 


이제 갓 두 돌, 사람으로 치면 기저귀를 떼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할 단계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지만 이제는 실록(實錄)을 기록하는 사관(史官)의 심정으로 조금 더 마음 편히 담담하게 글을 쓰고자 한다. 


그 길의 끝에서 '냉독훌스' 여사님을 다시 만난다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작가님, 2주년 축하드립니다'라는 댓글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축하받을 일도 아니거니와 그런 댓글에 '감사합니다'라는 영혼 없는 답글 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축하는 먼 훗날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자랑글 하나 투척하는 날이 왔을 때 그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글을 읽으시고 제게 많은 용기를 주셨던 'Faust' 작가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I miss the author 'Fa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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