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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16. 2023

제발 넉넉잡아 1분만 생각하세요

 사람들은 왜 사기를 당할까

내 삶의 방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하나 있다면 바로 '불신'(不信)이란 단어다. 한마디로 말해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내는 이런 나를 두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혼자 잘 난 사람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이 항상 힘들고 피곤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산정해 놓고 사는 인생이라 늘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크게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일이 드물고 무엇보다 타인으로부터 사기당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게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정확히 2년 전 이맘때 우리 가게에서 사기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그날은 오전 근무자가 오는 날이라 나는 조금 일찍 퇴근하고 아내는 늦은 오후쯤에야 출근하는데 하필이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내와 늦은 아침 식사를 함께 하고 아내가 출근하는 것을 배웅하고는 설거지와 밀린 집안 정리를 위해 현관문을 닫는 순간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GS25 OO점 기프트 카드 한도 50% 초과,


전국적으로 기프트 카드 관련 사기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빈번하게 발생하던 터라 각 점포별로 1일 판매 한도를 제한해 놓고 단시간 내에 일정 금액 이상 결제가 되면 경영주에게 경고성 문자가 가도록 하는 본사의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었다. 한 번 울리기 시작한 문자 메시지 알림음은 먼저 온 것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연이어 70% 초과, 90% 초과를 알려 왔고 급기야 정해진 한도를 다 채웠으니 본사에 요청해서 한도를 증액하라는 메시지까지 오기에 이르렀다.


사고가 발생했음을 직감하고 서둘러 가게로 전화를 걸었지만 가게 전화는 통화 중이었고 근무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오래도록 신호음만 울릴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마음은 급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급히 아내를 떠올렸다. 집을 나선 지 어느 정도 지난 시점이라 잘만 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쯤이야? 지금 OO기프트 카드 사기 사건 벌어진 거 같으니깐 어서 뛰어. 가서 무조건 막아."

전화를 끊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는데 얼마 후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기다렸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말에 따르자면 그 고객은 이미 다른 점포를 돌며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백만 원 가까이 충전해서 사기꾼에게 전송을 마친 후 마지막 즈음에 우리 가게에 왔고 일정 금액을 결제하고는 더 이상 결제할 없는 상황이 되자 근무자에게 한도 금액을 증액해 달라고 요청하고 기다리던 과정에서 아내를 만난 것이었다. 


사기가 의심된다며 말리는 아내의 말에도 고객은 우리 가게에서 충전한 상품권 코드까지 기어코 전송을 해버렸고 직후 아내가 거의 반강제로 빼앗다시피 영수증을 회수해서 반품처리를 해봤지만 POS기 화면에는 이미 사용된 것으나오며 결과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사기당하고 만 것이었다. 


속는 셈 치고 확인이라도 해보라는 아내의 말에 따라 뒤늦게 딸과 통화가 이루어진 후 그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고객은 한동안 자리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힘없는 발걸음으로 문을 나섰다고 했다.


다음날이 되어 당시 근무했던 근무자를 불러 몇 가지 확인을 하던 중 그 고객이 공무원 신분증을 가슴에 달고 온 공무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꺼번에 많은 금액을 결제하는 게 의심스러워 직접 쓰는 게 맞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너무 당당하게 말을 하기도 하고 설마 공무원이나 되는 사람이 사리분별을 못하겠나 싶어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비교적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것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아래 예시에서 찾을 수 있다. 세부적인 방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런 사기 사건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전화기가 고장 났다며 통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점, 회사(또는 어느 단체)에서 행사나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며 자신이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으로 믿게 만든다는 점, 모든 게 끝나면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엄마, 지금 내 폰이 고장 나서 친구 카톡으로 연락하는 거거든. 나 이번에 회사 보너스 지급하는 거 맡았는데 그걸 상품권으로 지급한다네. 지금 편의점 가서 상품권 결제하면 할인되니깐 일단 엄마 돈으로 결제해서 영수증 찍어 보내줘. 회사에서는 나중에 정상 금액 그대로 다 결제해 준대. 그러니깐 우리가 몇십만 원 정도 이득 보는 거야. 시간 없으니깐 빨리 가. 그리고 편의점마다 금액 제한 걸려 있으니깐 일정 금액 이상 하고 나서 그 제한 걸린 거 풀어달라고 하면 풀어줄 거야. 영수증 받는 대로 바로 사진 찍어 보내줘. 지금 급해."


위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사기 치는 사람들은 자녀 문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부모의 심리와 조금만 발품을 팔면 짧은 시간 내에 손쉽게 어느 정도의 현금을 쥘 수 있다는 물질적 욕구를 건드린다. 게다가 쉴 새 없이 독촉하며 몰아치는 문자 메시지까지 더해지면 웬만큼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령층만을 대상으로 행해지던 각종 금융 사기들이 최근 들어서는 그 연령대가 많이 낮아지는 추세이다. 우리 가게만 해도 그 사건 이후 비슷한 경험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가끔은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며 큰소리를 치거나 오히려 내게 화를 내는 고객들을 볼 때마다 내가 왜 욕을 먹으면서까지 설득해야 하는지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제발 1분만 투자하라고, 당사자와 통화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는 게 잘못인 걸까? 사기꾼 말은 그렇게 철석같이 믿으면서 왜 내 말은 안 믿는 건지 씁쓸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덧붙이는 글> 

최근에는 아예 전화기에 바이러스를 심어놓고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금 더 확실하게 하려면 공중전화를 이용하든가 본인의 전화기가 아닌 다른 전화기를 이용해 당사자와 통화를 하는 게 더 확실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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