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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Feb 12. 2021

장사한다고 못 배운 거 아니랍니다

자영업자가 못 배웠다는 편견과 고정관념


"배운 것이 없으니까 이 짓거리하고 있어…. 배운 것이 없으니까 이 짓거리하고 있다고…."

"못 배워서 편의점 지키지."

한 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부부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퍼부었다는 막말이다.


처음 그 기사를 보았을 때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분노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어린 학생이 폭행을 당하며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 같은 경우 단지 담배를 팔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아들뻘 되는 청소년으로부터 "대가리 허연 새끼가 나이 처먹고 할 일이 없어서 이런 거나 하고 있지."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오랜 기간 이 일을 하면서 내성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한 번씩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나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말하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적어도 현실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상상 속의 표현이자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자영업에 종사한다는 것, 그중에서도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남들이 우러러 볼만큼 존경받을 직업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얼떨결에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게 있어 굴복과 자포자기라는 생각이 강했고 돈만 모이면 언제든 그만 둘 생각이었기에 자영업자가 당연히 갖추어야 할 친절과 겸손, 배려라는 자세는 애당초 안중에도 없었다.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처럼 표정은 항상 굳어 있었고 심지어 내가 판단하기에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하는 손님을 만나기라도 하면 손님과 싸움까지 불사했다.


그러던 내가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은 일을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 한 분의 손님을 만난 이후부터였다. 인근에서 기원을 운영하셨던 그분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알코올 중독자 취급을 할 정도로 늘 술에 빠져 사는 분이셨다. 가끔 술을 안 드신 날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지도대국을 하거나 어린이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셨지만 술을 많이 드신 날이면 어김없이 사모님께 폭언과 화풀이를 하셨다. 


처음 얼마 동안은 나이 들어서 왜 그러시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으나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듣고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프로기사를 꿈꾸셨고 몇 번의 도전 끝에 최종 관문까지 이르렀다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탈락하셨다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내 지난 과거가 떠올라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을 수도 있었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것도 안타깝지만 그보다 평생의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으니 그 괴로움이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목표가 좌절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상실감은 또 얼마나 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는 기원 사장님을 보자 문득 나 또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슴에 계속 담아두다 보면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과 같은 모습을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안고 있던 고학력자라는 자부심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오만했던 나 자신을 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거나 흥분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애쓴 결과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그나마 예전에 비해 과거를 많이 잊고 사는 편이다.


누구나 말 못 할 사연 한 가지 이상은 다 안고 살겠지만 자영업자들 중에는 유독 사연 많은 분들이 많이 있다. 당장 내 주변만 둘러봐도 불과 얼마 전까지 은행 부지점장을 하셨던 분도 계셨고 고등학교 교장까지 지낸 분도 계실 정도로 한때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곳에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던 분들이 많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중에는 나처럼 아픈 사연을 갖고 있는 분도 있었다. 교사 임용고시를 통과하지 못하고 늦은 나이에 자영업에 뛰어든 한 사장님은 여전히 12월이면 연례행사처럼 앓는 날이 있고 교사가 되어 학교에 근무하는 친구들에게 괜한 자격지심이 생겨 애써 멀리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도 했다. 나도 가끔 관공서 주변을 지날 때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저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쓰린 속을 부여잡을 때도 있다. 


잊고 산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예전으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못 배워서 겨우 바코드나 찍고 사는 인생으로 보일 만큼 하대를 받을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짙게 다가온다. 내겐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불쑥 튀어 오르는 기억이 있다. 여전히 아픈 상처이고 꺼내고 싶지 않은 비밀이지만 아무래도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1999년의 그날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그날은 내 인생 첫 번째 변곡점이자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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