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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Feb 10. 2021

저녁이 없는 삶

18년 만에 맞은 첫 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또 다른 어떤 이에겐 간절히 바라는 특별한 하루가 되기도 한다. 퇴근 후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을 사서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향하는 것, 일을 끝내고 친구와 함께 소주 한 잔 간단히 나누는 것, 저녁 식사 후 아내 손을 잡고 밤거리를 산책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내겐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임파서블 미션'이다. 누군가 내게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나의 꿈, 나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한 적이 있다. 친구들 대부분이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판사 등 구체적이고 거창한 꿈을 이야기할 때 나는 착한 아내 만나 아들, 딸 하나씩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썼다. 내 글을 읽으신 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평범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니? 내가 보기엔 네 꿈이 가장 이루기 힘든 것 같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에서 20년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 온 야간 근무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학창 시절 인맥의 중심이라 불릴 정도로 많았던 수많은 인연들과 멀어졌고 좋아하던 술자리도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시간을 내서 취미생활을 하려 해도 뭔가를 배우기 위해 원하는 시간대를 맞추기 힘들었고 지친 몸을 이끌고 대낮에 퇴근할 때면 실업자 바라보듯 쳐다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나마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것은 퇴근 후 텅 빈 집에 들어설 때의 공허함이다. 늦은 아침, 사람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집안으로 들어설 때면 대학 다닐 때 수강했던 일본어 수업시간이 떠오른다. 우리말로 '다녀왔습니다.'를 뜻하는 "ただいま"(타다이마)는 자녀 교육을 위해 타국에 가족을 보낸 후 홀로 생활하는 중년 남성의 고독을 다룬 글이었다. 처해진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며 아무도 없는 집안을 향해 혼잣말로 "ただいま" 말하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실제로 본다면 지금의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낮과 밤이 바뀌어 늘 피로가 누적된 몸에, 이렇듯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 해진 마음의 병은 해가 갈수록 깊어갔지만 24시간 영업하는 업종의 특성상 다른 이들처럼 휴가나 휴일 등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간혹 가족과 함께 근교에 나들이를 갈 때면 어김없이 터지는 작은 사건 사고들 때문에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닌 상황에까지 이르자 자연스럽게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내게 18년 만에 주어진 열흘의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문을 닫는 동안 자주 오시던 고객들을 잃게 될까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던 내부 리모델링 일정이 잡힌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던 내 마음을 바꾼 것은 가족들이었다. 부족한 남편과 아빠를 만나 여행다운 여행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두 여자를 떠올리자 이번이 아니면 영영 그 기회를 놓칠 것만 같아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


공사가 시작되던 날, 진열된 상품들과 집기를 들어내고 필요한 짐들을 챙겨 집으로 향하는 길에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당분간은 가게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과 함께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 '왜 진작 이렇게 저지르지 못했을까'에 대한 후회까지 겹쳐져 가벼운 발걸음과는 달리 마음 한 구석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학교를 다녀온 딸과 아내 손을 이끌고 여행에 필요한 용품도 사고 저녁식사도 할 겸 외출을 했다. 실로 오랜만에 눈으로 본 저녁 시간의 거리는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길을 걷는 내내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며 아내와 딸이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당신 왜 그래? 지금 하는 행동이 마치 서울에 처음 와 본 시골 사람 같아. 아 맞다. 당신 이 시간엔 처음 나와 보지? 아이고 불쌍한 우리 신랑."

"나도 아빠랑 저녁에 같이 나온 거 처음이야. 그래서 너무 좋아."


멀쩡한 남편을 두고도 매일 혼자 잠을 자는 아내와 아빠와의 작은 추억마저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 50이 될 때까지 그런 작은 행복마저 누리지 못하는 현실은 결코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니었다. 호화롭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남들 사는 만큼은 살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는 현재의 내 삶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저녁을 먹는데 문득 오래전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모 정치인이 내세운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생각났다. 비록 그분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분이 던진 화두는 한동안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전하기도 했다. 나를 지칭해서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만 그분이 꿈꾸던 세상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도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여전히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이어질 것인지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고 어쩌면 '저녁이 있는 삶'이란 영원히 내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마음 한 구석에 늘 안고 있지만 '희망'이란 단어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산다. 


이 글은 힘겨운 현재를 살면서도 앞으로의 미래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리라는 믿음과 희망의 끈만큼은 놓지 않고 최선을 다 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느 50대 남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반성문이다. 그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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