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독관리사무소장 Sep 22.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그리운 순간

<시즌1> 2,189마일 애팔래치안 트레일 걷기 (D+9)

2017.05.05 FRI D+9 (흐리다가 폭우)
Total : 138 @wright gap
Today : 20.3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않았다. AT를 시작한지 9일째인데 이틀가량 맑고 나머지 모두 크던 작던 비를 맞았다. 원래 이쪽 구역이 비가 많이 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조금 늦게시작하는바람에 비를 자주 만나는 것인지. 무튼 비가 와도 우리는 가야만했다.

AT 하이커들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쉘터(shleter). 그저 하루밤을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피곤한 다리를 쉬기에도, 속수무책으로 내리는 비를 피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어제오후 계속해서 비를 맞으며 걸었더니 옷을 비롯한 온몸이 젖었었다. 간밤에 몸은 말랐으나 옷가지가 아직도 축축하다. 다시 이옷을 입고 걸어야하는것인데 몸의 체온이 뺏길까봐 엄두가 나지않는다. 햇빛도 없는데 자체적인 체온이 뺏기기시작하면 걷잡을수없이 추워질 것 만 같았고 혹여 저체온증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오빠, 날씨가 이래도 우리 가는게 맞는거죠?"
"일단 10마일만 가면 롯지가 있으니 거기서 쉬거나 쉘터같은 곳에서 쉬는게 낫지않을까? 비는 계속온다했는데 너무 걱정되면 멈출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볼까? "


결정을 해야했다. 예보상으로는 계속 비가 이어질 듯하였으니 언제까지 우리가 지난 밤 텐트를 쳤던 곳에 있을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축축한 상황이라 쉬기에 그다지 쾌적한 상황도 아니었다. 움직이면 몸에 열이 나므로 조금만 참으면 될것 같아 하이킹을 택했다.


우리의 이 마음을 안 것일까.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열심히 걷고 있으니 점차 비가 그쳤고 어느샌가 햇볕으로 땅에는 나의 그림자가 생겼다. 그 어느때보다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더욱 힘을 내서 열심히 걸었다. 오늘 1차적으로 목표했던 Nantahala outdoor center에 도착했는데 마감시간인 6시가 임박해있었다. 비록 하이커박스에서 건질만한 것은 팟타르트1개뿐이였고, 느긋이 구경하지는 못햇지만,  식량을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구매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런날씨에, 목표한 곳까지 도착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이 참으로 뿌듯했다. 비록 텐트를 칠 무렵부터 또 비가 쏟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X 캘리그라피작가 "양보"


오늘 길을 걷다가 현재 내가 가장 그리운 순간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여러가지가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떠올랐다. 아침 내 방침대에서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잠에 들어있다. 이불에서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보면 살짝 열려있는 방문너머로 엄마가 음식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또각또각 야채를 써는 소리, 쏴아하는 물줄기, 그리고 따뜻하게 밥이 지어져 뜸들이는 냄새가 난다. 엄마가 그립나보다. 엄마가 지어주는 밥이 그리운가보다. 그냥 그렇게 푹신한 이불에서 뒹굴거리는 순간이 그리운가보다.


Facebook : @seeyouonthetrail
Instagram : @stella_sky_asitis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마일을 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