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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독관리사무소장 Oct 01.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이 부족해

<시즌1> 2,189마일 애팔래치안 트레일 걷기 (D+10)

2017.05.06 SAT (흐리다가 폭우)
Total : 150.4 @stecoah gap + robbinsville
Today : 12.4  

간밤에도 또 비가 쏟아졌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새소리가 들렸다. 날씨가 그나마 개인 것이다. 요며칠 비가 계속되니 흐리더라도 비가 오지않는 것만으로도 감사거리가 되었다.

평소와 비슷한 시각에 일어났지만 오빠랑 아침부터 스타벅스음료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하느라 출발시간이 어느덧 9시 반을 넘겼다. 예전에 언니랑 형부를 보며 두 사람은 뭐그리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을까 생각했었는데, 누군가 우리를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cheoah gap에서 한적하게 쉼을 취하며.

오늘의 일기예보상으로는 오전 중에는 좀 개이다가 오후 3시부터 점차 강수확률이 높아져 5시이후부터는 강수확률이 90%가까이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해도 우리는 오늘도 또 걸어야했다. 우리는 일단 마을로 빠질 수 있는 150마일까지 가보기로 하였고 도착할 즈음의 날씨에 따라 상황판단을 하기로 하였다.

어제 고도를 많이 낮춰내려왔었던 탓인지 오늘은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오늘 오르막의 끝지점인 Cheoah gap에 오르자 얼마전 AT관련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그런 멋진 풍경이 나타났다. 푸르른 풀밭에 앉아 nantahala forest 산들이 주욱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점심 겸 간식을 먹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현재 식량으로는 206마일 지점에 있는 마을까지 걷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날짜수로는 넉넉히 3박 4일가량이 걸릴 것 같았는데 저녁끼니가 1끼 반, 그리고 행동식은 약간 부족한 상황이었다. 물론 아껴먹고 상황에 따라 굶을 수도 있지만, 원체 먹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고 무엇보다 식량의 양에 따라 심리적인 안정감이 달라지는 나의 상황에서는 예민한 문제였다. 


세계여행을 하게되면서, 특히 우리부부가 하고있는 세계여행 방식인 트레일과 자전거여행을 하게되면서 알게된  나의 새로운 모습들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먹는 것에 상당히 예민하다는 것. (하핫-)

단지 많이 먹는다의 의미라기보다는 우리부부가 하고 있는 여행방식이 항상 어느정도 식량을 확보하여 이동하는 특성을 가지는 여행이다보니 식량이 최소한으로 확보되지않으면 다소 예민해지는 나의 모습을 보게되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끼니를 무척이나 잘 챙겨먹었기 때문일테지만 에너지소비가많은 트레킹이나 자전거여행에서 식량과 물의 확보는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나는 막상 식량이 부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초조해졌고 내 생각을 오빠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우리 둘은 여러가지 가능한 선택사항에 대해 추려보았고 마을갈지 여부를 길을 더 걸으며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그리 멋진 풍경에서 고작 먹는 생각을 하였다니ㅎㅎ)

비에 젖은 우리를 누가 과연 히치하이킹을 해줄까 싶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스위치백으로 기나긴 산길을 내려오면서 어차피 식량공급을 위해 마을에 다녀오려면 조금더 큰 마트가 있는 로빈스빌에 다녀오는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마을에서 식량만 사고 오는 것과 하루 머물고 오는 것, 두 가지 선택권이 남게되는데 비용이 드는 문제인만큼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3시가 넘어가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며칠째 비를 맞아서인지 조금은 머리도 띵하고 열이 오르는 듯, 감기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게 로빈스빌로 갈 수 있는 지점에 도착했고 우선 마을에서 식량을 사기로 했다. 히치하이킹을 하여 마을에 도착하여 혹시나하는 마음에 호텔들을 알아보았지만 가격이 최소 '70-85+텍스'로 상당히 비싸게 느껴졌다. 호텔비용때문에 식량만 구하고 다시 산으로 갈까도 싶었지만 감기기운이 신경쓰였다. 호텔이든 산 근처의 호스텔이든 조금은 따뜻한 물로 씻고 따뜻한 곳에서 자고 싶었다. 이걸 말해야하나 어찌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오빠에게 말하였다.


"오빠 오늘은 식량을 사고 복귀하더라고 캠핑은 좀 힘들 것 같아요. 비싸긴 하지만 호텔이나 산근처 호스텔에서 묵으면 안될까? 감기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불구하고 X 캘리그라피작가 "양보"


같이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입장에서 실내숙박을 하자는 게 조금은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감기기운이 더 심해져서 쉬어야하는 날이 많아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다행이 오빠는 이해해주었고 진작에 이야기하지그랬냐며 숙박을 더 열심히 알아봐주었다. 반대상황으로 오빠의 컨디션이 안좋았어도 오빠도 나도 똑같이 행동했겠지만, 내가 괜한 걸 걱정했나보구나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하여 로빈스빌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가게 되었다. 따뜻한 물로 한참을 샤워하고 두툼한 침대이불 속에 누우니 세상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오늘의 이 예상 외 실내숙박에 대한 미안함을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테라플루를 끓여 마시고 감기기운을 털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Facebook : @seeyouonthetrail
Instagram : @stella_sky_asi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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