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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독관리사무소장 Nov 03.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 계속 가야할까

<시즌1> 2,189마일 애팔래치안 트레일 걷기  (D+17)

2017.05.13 SAT (비오다 오후 늦게 갬)
Total : 242.4 @painter branch
Today : 12.8

최근 보통 깨지않고 잘 자는 편인데 간밤에는 2시경에 잠시 잠에서 깨었다. 바람소리와 텐트를 거세게 때리는 비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기 때문인가보다. 텐트를 치고나서부터 내렸던 비가 잠에 들 무렵에는 그치는 듯하더니 그게 아니었다보다. 무슨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비가 내렸다. 그 소리에 잠을 못이루고 한참을 눈을 말똥거렸다. 그러다 다시 잠에 들고 깨고를 반복하였다. 아침에 깼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비가 안오길, 안전하길, 오늘은 좋은 풍경을 많이 보길 기도해본다.

여느 날과 다르게 오늘은 비가 와도 길을 나서기보다는 소강상태가 되길 기다렸다. 아직 마을(hot springs)에 가려면 2-3일가량은 걸릴텐데 비에 젖어 체력을 소진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해보이지않았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않았다. 그나마 11시이후부터는 조금 비가 그치는 듯하여 준비하여 하루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는 또다시 뿌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바람에 의해 나뭇가지의 빗방울이 떨어지나 했는데 이내 샤워분무기처럼 비가 내리기시작했다. 대체 AT를 걸으며 얼마나 많은 비를 만나게 될찌 무척궁금하다. 오빠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지금이라도 PCT로 갈까?"

라고 물었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까?"

라고 오빠는 바로 답하였다.



그 뒤로 '우리가 지금 이 길을 왜 걷고 있지?'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지금 순간을 행복하기위해 보통의 일상을 떠나 세계여행을 떠나왔다. 하지만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관, 첫 출발의 순간에 생각했던 것과 상충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걷고 있는 AT가 생각보다 큰 재미나 감명이 없는 것도, 생각보다 힘이 들어 더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 첫번째 장거리트레일이기에 조금은 더 신나게 걷기도 하였다. 딱히 비교할 대상이 아직 뚜렷하게 형성되어있지 않아서 시무룩해하거나 흥미를 적게 느끼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 오빠의 경우 AT를 PCT나 CDT와 같은 다른 여느 길과 비교를 하며 이곳에서의 재미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그저 의무감때문에, 트리플크라운이란 것 때문에, 그리고 나 때문에 재미없는 AT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현재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데 어찌보면 꾸역꾸역 이 길을 계속 가야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고 하는 일인데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X 캘리그라피 작가 "양보"


우리가, 특히 오빠가 얼른 이 길 위에서 재미를 찾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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