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팀장님과의 파격적인 협상
다음 날 아침, 새벽이슬은 출근하자마자 곧장 팀장님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제의 불안과 망설임은 온데간데없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팀장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니컬한 표정으로 그녀를 맞았다. "자네, 아침부터 무슨 심각한 얼굴이야. 설마 야간대학 다닌다고 야근 빼달라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새벽이슬은 심호흡을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연봉 인상도 요구하러 왔습니다."
팀장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새벽이슬 씨,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건가?"
"협박이 아닙니다. 협상입니다. 저는 제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고 싶습니다. 야근 없는 정시 퇴근과 함께, 2년 안에 제 연봉을 두 배로 올려주십시오."
새벽이슬의 패기 넘치는 제안에 팀장님은 턱을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좋아, 새벽이슬 씨. 내기 한 번 할까?"
"내기요?"
"그래. 2년 안에 새벽이슬 씨의 아이디어로 신규 사업 아이템을 하나 더 성공시켜. 그리고... 야간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와. 전부 성공하면 연봉 두 배는 물론, 다음 프로젝트 팀장 자리까지 보장해주지."
팀장님의 파격적인 제안에 새벽이슬은 어안이 벙벙했다.
새벽이슬은 굳은 얼굴로 팀장님의 제안을 듣고 있었다. 2년 안에 연봉 두 배, 팀장 자리까지.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그 조건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신규 사업 아이템을 하나 더 성공시키고,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따내라니. 마치 '하늘의 별을 따 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팀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새벽이슬의 단호한 대답에 팀장님의 얼굴이 다시 차갑게 굳었다.
"새벽이슬 씨, 이게 내 최선이야. 이 정도 투자도 없이 당신을 붙잡아둘 순 없어.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야."
"저도 압니다. 하지만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조건은 제게 너무 많은 짐입니다. 회사가 제게 바라는 건 제 능력이 아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기계인 것 같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일할 수 없습니다."
새벽이슬은 가방에서 사직서를 꺼내 팀장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는 10월 31일까지만 근무하겠습니다. 퇴직금은 그때까지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팀장님은 사직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진심인가, 새벽이슬 씨?"
"네, 진심입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과 열정이 제 삶을 갉아먹는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요. 이젠 제 삶의 균형을 찾고 싶습니다."
팀장님은 한숨을 쉬며 사직서를 들었다 놨다 망설였다. 하지만 새벽이슬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단단한 결심이 느껴졌다. 결국,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새벽이슬 씨의 결정을 존중하겠어. 하지만 우리 회사는 언제든 당신에게 열려 있다는 걸 기억하게."
새벽이슬은 팀장실을 나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그녀를 짓눌렀던 거대한 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그녀는 불안한 직장인이 아닌, 오롯이 그녀 자신을 위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강의실에 들어선 새벽이슬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 저 결국 사직서 냈습니다."
교수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새벽이슬 학생, 잘했어. 훌륭한 선택이야. 앞으론 좀 더 여유롭게 공부할 수 있겠네. ."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새로운 불안감이 밀려왔다. '과연 이 결정이 옳았을까? 안정된 수입 없이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날 밤, 새벽이슬은 집에 도착해 잠든 아들 한월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괜찮아, 한월아. 엄마는 이제 너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어 줄게. 그리고 내 꿈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조금 늦더라도, 행복하게 나아가자.'
10월 8일에 내가 참여하는 사진 작품 전시회에 교수님께 카톡으로 초대장을 보냈다. 보내긴 했지만 바쁘신데 설마 오시겠어, 라는 마음으로 저녁엔 주 5일 강의를 들으며 바쁘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10월 14일 월요일 저녁 강의. 사회복지 윤리와 철학 수업, 쉬는 시간이라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교수님께서 "새벽이슬~!" 내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학우 분들이 웃으시며 '너 혼났다'라고 하셔서인지,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더 긴장을 하며 교수님께 갔다.
"교수님, 저… 무슨 일로…"
교수님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따뜻하게 웃었다.
"무슨 일은 무슨 일? 전시회는 언제 해?"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전시회 날짜를 말씀드렸다. "11월 23일 토요일입니다."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꺼내 캘린더에 표시했다.
"좋아. 그럼 그날 전시회에서 보자고. 밥도 먹고, 놀자고."
말씀하시면서 책에 꽂아둔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하얀 봉투… 내가 뭘 잘못해서 학교 나오지 말라는 경고장인가? 아니, 혹시 안쓰러워서 밥 먹자는 건가?' 온갖 상상을 하며 걱정 반, 근심 반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교회 초대장이었다.
강의가 끝난 후, 나는 망설이다 교수님께 조심스럽게 카톡을 보냈다.
[새벽이슬] '교수님, 초대 감사합니다. 어색하지만 한번 가보겠습니다.'
카톡을 보내고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괜히 보냈나? 너무 부담스러워하시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읽음' 표시가 뜨고 답장이 왔다.
[교수님] '고마워. 10시와 12시 예배 중에 몇 시에 올 건가?'
간결하지만 진심이 담긴 교수님의 답장에 나는 뭉클함을 느꼈다. 퇴사 결정 후 불안했던 마음이, 교수님의 따뜻한 한마디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막연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싸우던 내게, 교수님의 따뜻한 초대는 마치 작은 닻처럼 느껴졌다. 나의 삶이 다시 한번 새로운 방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