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31. 금
동이 트기 전, 세상이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새벽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습관처럼 몸이 먼저 깨어난다. 차가운 공기와 맞닿는 순간, 몽롱했던 정신이 퍼뜩 든다. 서둘러 몸을 씻고 주방으로 향한다. 전기포트에 물을 채우고 스위치를 누른다. 물이 끓는 웅웅 거리는 소리 사이, 나는 잠시 주방 선반 위의 여닫이 문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밤사이 푹 쉬지 못한 티를 내는 듯, 피로가 내려앉은 눈가. 냉큼 아이크림을 꺼내어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펴 바른다. 이 작은 행위는 오늘 하루의 고된 노동을 견뎌낼 수 있게 해 달라는, 나 자신에게 거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주문이다.
따뜻하게 끓인 물 한 잔과 함께, 어제저녁 찜기에 넣어 둔 고구마를 꺼낸다. 포슬포슬 달콤한 고구마는 텅 빈 위를 부드럽게 채워주는 든든한 아침이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을 뚫고 나가야 할 나에게 주는 최소한의 보상이며 에너지다. 그렇게 씹고, 마시고, 짧은 평화의 시간을 누린 후, 묵직한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왕갈비와 노동의 무게: 오후 7시까지의 사투
오늘의 일터인 정육 공장에 도착하면, 곧바로 왕갈비와의 사투가 시작된다. 거대한 갈빗대 덩어리들을 정형하고 손질하며, 칼이 뼈와 살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하루 종일 귓가에 울린다. 정교함과 힘을 동시에 요구하는 이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소모시킨다. 뼈를 발라내고, 고기를 다듬고, 부위별로 분류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허리를 펴기 힘들게 만들고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새벽부터 시작된 노동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7시까지 쉼 없이 이어진다.
온몸의 기운이 바닥나고, 작업복에는 하루 종일 맡았던 육류의 기름진 냄새가 깊숙이 배어들 무렵,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그 순간, 공장 측에서 건네준 간식 꾸러미가 오늘의 마지막 위로가 된다. 카스타드 두 개, 오예스 작은 것 두 개, 그리고 두유 한 팩. 밥도 아닌데, 이 조그만 간식 꾸러미는 예고 없이 찾아온 달콤한 보너스처럼 느껴진다. 기름진 냄새에 지쳐버린 코끝과 혀에 단맛이 닿는 순간, 뻣뻣했던 근육들이 아주 잠시나마 이완되는 기분이다. 짧은 몇 입 만으로도 묵직했던 노동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된장찌개와 스팸 한 조각: 가장 따뜻한 보상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면, 비로소 ‘노동자’에서 ‘엄마’로 돌아온다. 하지만 쉴 틈은 여전히 없다. 우선 나를 위한 급한 허기를 달래야 한다. 냉장고에서 새송이버섯을 꺼내 썰고,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둘러 볶는다. 매콤한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밥 한 숟갈과 함께 후루룩 넘긴다. 제대로 된 음미라기보다는, 급한 불을 끄는 전투적인 에너지 충전이다.
나의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곧 아들이 주짓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다. 아들에게는 든든하고 따뜻한 저녁을 먹여야 한다. 냉장고 속 깊은 맛의 육수를 꺼내 끓이고, 그 위에 구수한 된장을 넉넉히 푼다. 부드러운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남은 버섯도 듬뿍 넣어 찌개를 끓인다. 그리고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팸을 꺼낸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스팸 두께만큼, 아들이 훈련으로 소모한 에너지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담긴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 소리와 팬에서 지글거리는 스팸 굽는 소리가 온 집안에 퍼진다. 이 소리는 하루 종일 맡았던 왕갈비와 기계 소음과는 완전히 다른, 가장 안정되고 따뜻한 삶의 소리다. 찌개 냄새와 스팸의 짭조름한 냄새를 맡으며 칼질로 지쳤던 손목과 허리가 조금씩 이완되는 것을 느낀다. 아들이 구수한 찌개와 따뜻한 밥, 그리고 노릇하게 구운 스팸 한 조각으로 훈련의 피로를 풀고, 내일의 활력을 채우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바로 오늘, 내가 모든 고됨을 버텨낸 이유이자, 가장 따뜻한 보상이다. 왕갈빗대와 된장찌개, 그리고 스팸 한 조각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