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속에 마시는 진심 한 잔
알람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우기도 전, 몸이 먼저 반응하며 눈을 떴다. 새벽 5시 30분. 창밖은 아직 잉크를 풀어놓은 듯 짙은 푸른색이었고, 집 안에는 서늘한 새벽 공기가 감돌았다. 삼일절이자 주일이었던 어제, 남들은 휴일의 달콤한 늦잠을 즐기며 여유를 부릴 시간이었지만, 주말마다 요양원과 주간보호센터를 번갈아 오가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 내 몸의 시계는 이미 실습지의 팽팽한 긴장감에 맞춰져 있었다.
거실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낮게 깔아 두고 씻으러 향하는 길,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잠을 쫓고 거울 앞에 앉아 평소보다 공을 들여 기초화장을 시작했다. 설화수 크림의 은은한 향이 코끝에 닿을 때 비로소 '오늘도 무사히'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어보며 가방 안에 나만의 생존 키트를 챙겼다. 따뜻한 율무차 한 잔으로 빈속을 달래고, 에너지가 되어줄 바나나 한 개, 그리고 오후의 고단함을 견디게 해 줄 타이레놀 한 알까지 챙겨 넣고 나니 그제야 현관문을 나설 용기가 생겼다.
요양원 현관에 들어서면 실내화로 갈아 신는 마찰음이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진다. 이제는 통과의례가 된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하얀 키트 위에 선명하게 그어지는 한 줄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출석부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나의 위치는 3층, 누워 계시는 와상 어르신들이 머무는 층이었다. 그곳은 주간보호센터의 시끌벅적한 활기와는 전혀 다른, 정적이면서도 밀도 높은 돌봄이 필요한 공간이었다. 어르신들이 침대에서 떨어지지는 않을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매서운 눈으로 관찰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청소기를 돌리고 마포걸레를 집어 들었다. 걸레 짜는 기계에 넣어 물기를 아주 꽉 짜내는데, "바닥에 물기 하나 없어야 해. 어르신들이 미끄러지면 큰일 나니까"라는 선배님들의 당부가 귓가를 맴돌았다. 기계의 힘을 빌려 물기를 바짝 제거한 걸레로 거실과 주방, 각 호실의 바닥을 닦아내며 혹시라도 남았을지 모를 습기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 바닥 구석구석을 훑는 동안 이마엔 어느새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지만, 내가 닦아낸 이 뽀송한 바닥이 어르신들에게는 유일하고 안전한 길이라는 생각에 걸레질 한 번에도 온 진심을 실었다.
식사 보조 시간은 실습생에게 가장 세밀한 정성을 요구하는 때였다. 음식물이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살피며 한 분 한 분의 속도에 맞춰 식사를 돕고, 식후에는 치아가 없으신 어르신의 잇몸을 부드럽게 닦아드렸다. 개운해하실 어르신의 표정을 상상하며 정성을 다하던 그때, 한 어르신이 갑자기 내 손목을 꽉 꼬집으셨다. 순간 "악" 소리가 날 만큼 아찔한 통증이 팔을 타고 올라왔지만, 당황함보다 먼저 터져 나온 것은 옅은 미소였다. "어르신, 제가 조금 서툴렀나요? 다음엔 더 살살해드릴게요."라고 나직이 속삭였다. 다행히 오늘 아침 거울을 보니 손목엔 상처 하나,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그 투박하고 거친 손길마저 어르신 나름의 대화 방식이라 생각하니 화보다는 애틋함이 앞섰다.
점심으로 먹은 뜨끈한 닭칼국수와 따스한 캔커피 한 잔의 온기로 오후를 버텨냈다. 각 방의 가구와 TV 다이를 손걸레로 닦아내고, 빳빳하게 마른 앞치마를 정성껏 걷어 개키며 어르신들의 기분과 건강 상태를 마지막까지 살폈다.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와 입실과 퇴실 사인을 꼼꼼히 한 뒤, 교육원에 제출할 인증샷을 찍어 전송했다. 오늘 하루 내가 마주한 배움의 기록들을 실습 일지에 꾹꾹 눌러 담아 사무실에 제출하고 인사드리는 것으로 삼일절의 치열했던 임무는 마침표를 찍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저녁을 먹고 씻고 나니 온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기출문제를 풀어나가는 수험생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깊은 잠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주말 내내 두 곳을 번갈아 오가며 신경을 쏟은 탓인지, 눈을 감아도 실습지의 풍경과 어르신들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꿈속에서조차 식사 보조를 하고 바닥을 닦는 장면을 몇 번이나 마주하다 새벽녘에 결국 잠이 깨버렸다.
대체공휴일인 오늘은 평일의 휴식이다. 세상은 고요하게 멈춰 있는데, 나 혼자 어제의 현장에 남아 있는 듯한 기분에 한참을 어둠 속에서 뒤척였다. 스트레칭으로 굳은 근육을 달래보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덧 창밖에는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주방으로 향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기를 맡으며 손바닥에 전해지는 기분 좋은 온기를 느끼며 보리빵에 커피를 적셔서 먹었다. 어제 어르신이 꼬집었던 손목은 이제 매끈하지만, 그 온기만큼은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오늘은 실무의 땀방울 대신 학업의 열정으로 하루를 채워야 한다. 정오에는 오랜만에 스승님과 만나 따뜻한 점심 한 끼를 나눌 예정이다. 무엇보다 내일은 사랑하는 아들이 고등학교라는 큰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의 첫 등교 식사를 정성껏 챙겨주고, 씩씩하게 집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고 나면 나 역시 내일 오전 10시에는 전공 수강 과목을 확인하고 교양 과목을 신청하며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고, 요양보호사 강의와 오답 노트를 정리하며 내실을 다질 것이다. 그리고 저녁, 드디어 기다리던 야간 대학의 개강 날이다.
창밖으로 번지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나직이 다짐해 본다. 오늘 잘 먹고 잘 쉬며 채운 이 에너지가 내일의 아들과 나를 꿋꿋하게 지탱해 줄 힘이 될 것임을. 오늘 마시는 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어제의 수고를 다독이고, 설레는 내일을 맞이할 다정한 마중물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