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밤: 티 나지 않던 시간들이 쌓여 일군 기적

by 뽀송드림 김은비

학교에서 돌아와 구두를 벗는데 발바닥이 묵직하다. 오늘 하루 참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화장을 지우고 거울 앞에 앉으니, 아까 강의실에서 "얼굴에 빛이 난다"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사실 작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남들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운처럼 보이겠지만, 나에게 이 모든 과정은 '티 나지 않는 성실함'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기적이라는 것을.

버려지는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참 막막한 날들이 많았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전공 서적과 씨름하고, 고단한 몸으로 실습 현장을 지키며, 밤마다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원고를 써 내려가던 밤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이렇게 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 마음이 헛헛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강의실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눈빛을 보며 알았다. 그동안 내가 보낸 무수한 시간은 결코 사라진 게 아니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묵묵히 채워 넣은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 나의 분위기를 만들었고, 나의 말투와 눈빛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쏟은 정성은 하나도 버려지지 않고 내 삶의 토양이 되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사실도 겸허하게 다가온다. 찬양의 한 구절처럼, 내가 지쳐 울고 있을 때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던 손길이 있었다.

가야 할 길을 몰라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방향을 일러주셨다. 스승님의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충고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되었고, 먼저 신앙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 스승님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았다.

돌이켜보니 이 모든 인연이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앞서 걸어가며 등불을 비춰준 손길은, 결국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자 은혜였다.

귀로 담은 가르침이 삶이 되다
학교에서 보낸 긴 시간들도 나를 빚어냈다. 강의실 구석에 앉아 교수님들의 말씀을 귀로 담으며 보낸 수많은 시간. 처음엔 그저 지식으로만 들리던 말들이 어느새 내 마음의 뼈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귀로 꾸준히 듣다 보니 어느덧 내 발걸음은 어려운 이들을 향하게 되었고, 내 손은 세상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나는 조금씩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르침이 행함이 되고, 행함이 곧 나의 삶 자체가 되어가는 과정은 참으로 경이롭다.

창밖엔 여전히 차가운 눈과 비가 섞여 내리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 나를 여기까지 이끄신 그분의 은혜를 생각하니, 내일은 오늘보다 더 다정한 엄마로, 더 성실한 학생으로, 그리고 더 깊이 있는 작가로 살아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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