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uie Aug 24. 2020

순수하지만 강인한 백차

여섯 가지 차, 여섯 가지 매력 Ⅰ

위와 같은 제목(여섯 가지 차, 여섯 가지 매력)으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지인 H는 대번에 「너무 '어디서 본 듯한' 제목이다. 주목 받기엔 글렀다」 고 혹평했다. 나는 비평을 원하거나 요청하지 않았건만,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관을 밝히는 H는 항상 어떤 이슈에건 자신의 색깔과 특성을 강력하게 표출하곤 한다.


글의 주제 때문일까, 나는 H를 보며 흑차(= 보이차)를 떠올렸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고, 차의 향과 맛에 있어 그 성격이 확실하며, 흑차 매니아는 흑차만을 찾는다. 싫어하는 사람은 흑차를 쳐다도 안 본다는 것마저 비슷하다




보통 '6대 다류(茶類)'라고 불리는 여섯 가지 차(Tea)의 종류는 차를 만드는 방법과 과정, 즉 제다법에 따라서 분류한 것이다. 백차, 황차, 녹차, 우롱차(청차), 홍차, 흑차로 나눌 수 있다. 보통 가장 많이 마시는 것은 녹차, 우롱차, 홍차로 볼 수 있지만 흑차도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고, 요즘에는 백차와 황차에 대한 수요도 올라가는 중이다.


사물을 사람에 비유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오글거려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왕 지인 H로 시작했으니 주변의 사람들과 6대 다류를 한번 매치해 보았다. 우선 첫 시작은 백차(white tea).


꼼빠니 꼴로니알의 백차 베이스 가향차, The des Neige(떼 데 네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투명하리만큼 하얀 피부와 마르고 작은 몸에 비해 강단 있고 고집 세던 예전 직장 후배 P다.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P는 마치 직장인으로 환생한 잔 다르크같았다. 대한민국의 뻔하디 뻔한 회사에서 수없이 부딪치는 많은 불합리, 불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대강 넘어가는 앞뒤 안맞음에 대해서 눈을 감지 않는 타입이었다.


덕분에 선배였던 내가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동시에 P는 미워할 수 없는 순수함이 있었고 인간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공감력이 좋았고 어느 이야기든 쉽게 몰입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어느 무리에든 잘 어울려서 이 팀 저 팀의 소식을 물어다 주는 것도 P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상처도 많이 받는 타입이었고, 어떤 날은 밤 10시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 와 업무 시간 중에 나누었던 우리의 대화 중 서운했던 부분에 대해서 1시간 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대화 끝에 납득이 되거나 받아들일 수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하게 마무리하곤 했다.


어느 날의 작은 결혼식을 끝으로 P와의 동료 관계는 일단락되었지만, 그 날 드레스 대신 입었던 소박한 하얀 원피스가 눈부시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P의 이미지는 내게 'white'로 남아 있다. 결혼을 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난 그녀는 가끔 소식을 전해 오고, 이제는 자그맣고 P보다 더 하얀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




백차는 가장 사람의 손이 덜 간 차이다. 잎을 따서 살짝 시들게만 한 후 건조한 형태이기에 굳이 말하자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상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만들기 쉽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제다 과정이 별로 없는 만큼 적절한 향미를 만들어 내기가 까다롭다.


동시에 향과 맛이 강하지 않은 편이라 여러 가향에 다 잘 어울리는 차이기도 하다. 그래서 블렌딩할 때도 많이 쓰이고, 고급스러움을 더할 때 사용하는 베이스 차가 된다.



백호은침(좌), 백모단(우)


가장 유명한 백차는 역시나 '백호은침 Silver Needle'과 '백모단 White Peony'이다.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이름인 '백호은침'은 가느다랗고 하얀 솜털(백호)이 뒤덮인 어린 새싹만으로 이루어진 고급 백차로, 소위 최상 등급이다. 그보다 약간 낮은 등급인 '백모단'도 매우 맛있고 마시기 편한 차이며,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향긋하고 깔끔하다. 사실 내 취향에는 백모단 쪽이 좀더 맞았다.


일반적으로 차를 구입하는 루트는 보통 국내에 매장이나 편집샵이 있는 유럽/미주 출신 브랜드인데, 예전에는 (있긴 있었지만) 백차를 많이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백차 라인과 제품들이 점점 많이 출시되고 있는 중이고, 미국 브랜드인 타바론이나 리쉬티, 하니앤손스 - 역시 웰니스의 나라 미국인가 - 에서도 꽤 발빠르게 백차 제품을 냈다.


특히 백차는 열을 내려주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해서, 해열제로 활용되기도 하고 여름에 좋은 차로도 알려져 있으니 지금 이 시즌에 마시기에 더없이 좋겠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