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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Oct 12. 2020

궁전에서 차 마셔 본 적 있으세요?

경복궁 생과방에서의 달콤한 시간

'궁에서의 티타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럽이다. 런던의 켄싱턴 궁전 안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오랑주리 레스토랑(지금은 다른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루브르 궁전이긴 한데 미묘하게 복도인 듯한 카페 마를리도 있다.


특히 오랑주리는 전통적인 공간, 분위기, 정말로 궁에 초대받아 차를 마시는 듯한 여유로움까지 모든 밸런스가 잘 맞는 곳이다. 그 곳을 떠올리면 항상 서울의 궁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경복궁 생과방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은 올해 초였다. 직장동료 N이 '님이 좋아할 듯 하다'며 어느 날 툭, 하고 보내 준 링크 안에는 내가 생각해 왔던 '궁전에서의 티타임'이 정말 실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과방은 경복궁 안에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토대로 실제 임금이 먹었던 궁중병과와 궁중약차를 오늘날에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곳'이다.

https://saenggwabang.modoo.at/


찾아보니 2018년도에도 이미 운영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왜 이제야 알았는지. 다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잠깐 열었다가 줄곧 운영 중단이었고, 지난 10일부터 재개했다. 어떻게 다들 알았는지 재오픈한 날부터 북적거렸다. 사전 예약을 받지는 않으므로 일단 닥치고 가서 줄을 서야 하는데, 오픈이 10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11시 정도까지는 가는 것이 안전하다. 다만 좌식인 관계로 그리 오래 앉아 있지는 못해서 의도치 않게(?) 회전율은 높은 편이다.


생과방은 생각보다 더 구석진 곳에 있는데, 근정전을 지나고 교태전을 지나서, 양쪽에 난 쪽문 중에 왠지 사람들이 많이 가고 있는 쪽을 향해 들어오면 바로 보인다. 유유히 걸어오면 경복궁 입구에서 걸어서 한 15분 걸리는 듯.


코로나 시대에 생과방도 대비한다(좌), 우측 통행합시다(우)


심지어 조선시대의 나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안내도 해 주기에, 뭔가 양반이 된 느낌이다. 메뉴를 고르고 결제를 하고 나면 - 결제를 한다는 점이 양반과 다르군 - 나인들이 그 메뉴를 쟁반에 받쳐 들고 우리를 자리로 안내해 준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코로나때문인지 개인 핸드젤도 주고, 개인석과 개인석 사이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벽이 있다. (사진 참조) 이것만 아니면 정말 궁 느낌 뿜뿜인데, 나라에서 시키니 어쩔 수가 없겠다. 그래서 일행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앉은 느낌으로 차 마시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각자 나온 차를 벽 너머로 한 잔씩 건네 주며 마시다 보니, 학창 시절에 독서실 옆자리 짝꿍과 믹스 커피 나누어 마시던 기억이 난다.


감국다, 그리고 다과들


(다과는 제일 왼편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여향병, 배 정과, 다식, 대추찰편, 주악)


차 메뉴는 6-7가지 정도 되고, 다과 메뉴는 5-6개 정도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것과는 메뉴가 좀 달라졌다. 가장 추천할 만한 메뉴는 주악으로, 사진의 귤같이 생긴 다과다. 시그니처 메뉴라는 서여향병은 고급스러운 통에 담겨 나와서 과연 비싼 값을 하는구나, 했지만 맛은 평범한 편.


차는 블렌딩 티를 티백으로 우려 준다. 전통적 티타임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티백은 아쉽지만, 맛과 향은 만족할 만 했다. 오미자차는 차갑게 내는 메뉴만 가능한데, 숙우에 따로 얼음을 담아서 내주기에 끝까지 시원하게 마실 수 있었다. 각 메뉴는 차가 4,000원, 다과는 1,000원 정도로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막 시키다 보면 결제할 때 약간 놀란다


창 밖의 풍경(좌), 주문하는 곳 근처 나인 옷을 입은 직원이 보인다(우)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아무래도 인기가 많다. 햇살이 비춰 들어오는 창가에서 소반에 받친 차와 다과를 보고 있다 보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방석이 꽤 푹신한 편이지만 바닥은 원래의 한지 장판 위에 카펫을 따로 깔아 두었다.


재오픈이 알려지면 많이들 찾을 것 같은데, 누구든 와서 티타임을 즐겨도 좋아할 만한 곳이다. 가을 날씨만큼 기분 좋아지는 공간을 또 하나 찾았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ea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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