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품격 있는 중국 홍차, 기문
지금은 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대륙의 실수 샤오미 '메이드 인 차이나'는 제품력이나 질에 있어서 최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생산 제품이 각광받는 분야가 많이 있을 텐데, 그중에서 내가 선호하는 분야는 단연 차(茶)와 도자기다.
그중에서도 처음 빠졌던 것이 기문(祁門, 치먼, keemun) 홍차였다. 홍차의 이름이라기에는 좀 딱딱한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인데, '기문'은 기문 홍차가 생산되는 지역 이름이다. 기문은 안후이(안휘) 지방에 속해 있는데, 안후이는 영화 《아바타》에 영감을 주었다는 유명한 황산이 있는 곳이다.
기문 홍차는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이고, 세계 3대 홍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몇 대 뭐뭐, 라는 건 참 애매한 데가 있긴 하지만 중국의 10대 명차는 중국 농업부에서 매년 엄격하게 선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명차 리스트에 선정된다는 것은 큰 명예라고 한다. 기문은 오랫동안 이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참고로 세계 3대 홍차는 별도의 권위 있는 기관에서 선정하거나 하는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리스트이며 인도의 다즐링, 중국의 기문, 스리랑카의 우바를 칭한다. (주요 지역마다 하나씩 찍어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문은 와인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 '풀 바디(full-bodied)'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홍차로, 꿀같이 달큼하고도 은은한 훈연 향이 난다. 아주 고급인 기문에서는 난초 향이 나기도 한다는데, 아직 기문을 마시면서 난초 향을 느껴본 적은 없어서 궁금하기도 하다. 다른 얘기지만, 난초 향을 느끼고 싶다면 우롱차인 철관음을 추천한다.
기문 홍차에는 미르세놀(myrcenol) 오일과 제리아놀(gerianol) 오일이 들어 있어서 향긋하며, 홍차 잎에서 윤기가 돈다. 참고로 미르세놀은 라벤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시트러스 계열 에센셜 오일이고, 제리아놀은 장미 오일에서 찾을 수 있는 향류다. 그래서 마시다 보면 다양한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특징.
밀크티로 마셔도 훌륭한 차다. 밀크티 최고의 파트너(!)라고 하는 아쌈에 비하면 진한 맛은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고소하고 목 넘김이 편안한 기문 밀크티의 맛은 중독성이 있어서 항상 찾게 된다. 일부 브랜드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는 100% 기문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참고 글: 아침잠을 확 깨워 드립니다)
원래 중국은 녹차로 유명한 곳이었고, 아직도 중국인들은 녹차 혹은 우롱차를 압도적으로 많이 마신다. 그러나 세계 차 시장의 흐름과 규모는 아무래도 홍차 쪽이 주류이고, 중국의 홍차 생산도 그 흐름에 맞춰 갔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홍차 제다(= 차를 만드는 것)는 명나라 말기에 시작되었고 가장 유명한 홍차로는 정산소종(참고글: 스모커가 사랑하는 홍차)과 기문을 꼽는다.
기문은 정산소종보다는 늦게 개발되었지만 간소해진 제다법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홍차로 볼 수 있는데,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1915년 파나마 태평양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난 다음부터였다. 그 후로도 큰 규모의 국제 대회에서 많은 수상을 하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홍차 중 하나가 된 것이다.
※ 브런치북도 읽어 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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