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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Sep 15. 2020

아침잠을 확 깨워 드립니다

진하고 고소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맛

어렸을 때 좋아하던 만화 시리즈 중에 《달려라 호돌이》라는 학습만화가 있었다. 88올림픽 기념으로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이 시리즈는 세계 평화를 위한 특정한 원소를 찾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윤멍구 박사와 그 일행들, 그리고 백두산 출신 호랑이가 캐릭터화된(!) 호돌이 이야기다. 연식 나온다


그 중 내가 좋아하던 몇몇 편 중에 '영국 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유럽식 아침식사'와 비교한 '영국식 아침식사'의 풍성함이 잘 묘사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영국에 살 때도 이 '영국식 아침식사'라는 걸 제대로 먹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영국식 아침식사 차(English Breakfast Tea)'는 참 많이도 마셨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이름 그대로 아침 식사에 곁들이는 홍차이다. 아침에 마시는 음료의 기능이 거의 그렇듯이, 잠을 깨우는 역할을 하기 위해 진하게 우려서 마신다. 대부분 BOP 등급으로 만들어지며, 빈 위장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우유와 설탕을 섞어서 마시는 경우도 많다.

(참고글: 최고급 홍차를 마시고 싶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얼 그레이(Earl Grey)와 함께 대표적인 블렌디드 티(Blended Tea)라고 볼 수 있는데, 한 지역의 홍차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난 홍차를 섞어서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가장 대표적인 블렌딩은 인도의 아삼과 스리랑카(실론) 차를 섞어서 만드는 것이고, 거기에 중국의 기문 홍차나 케냐의 홍차를 섞기도 한다.


물론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블렌디드 티인 것도 아니다. 미국의 유명 홍차 브랜드 '하니 앤 손스Harney & Sons'의 잉블은 100% 기문 홍차로 만든다. 1800년대의 영국에서 마셨던 전통을 살리기 위해 중국 홍차만을 사용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잉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포인트는 쉽게 구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그리 비싸지 않은 찻잎을 활용하여 매일 아침 마실 수 있는 것이고, '얼 그레이'에 비해서는 서민을 위한 블렌딩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침에 진하게 우린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서 한 포트 가득 마신 후 일하러 나가는 사람을 그려보면 될 듯. 요즘에야 그런 구분도 무의미하지만 말이다.




워낙 인기 있고 사랑받는 베스트+스테디셀러이기 때문에 웬만한 브랜드에서는 다 나오고, 블렌딩의 종류를 바꿔서 여러 가지의 '브렉퍼스트 티'를 판매하기도 한다. 심지어 '잉블'이라고 붙어 있지 않지만 블렌딩이나 차의 구성이 '잉블'로 보이는 제품들도 많다. 여러 제품을 사다가 번갈아 가며 마셔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



# 해로즈 No.14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 해로즈 No.49 블렌드 49

우아한 로즈골드 틴이 열 때마다 기분 좋게 하는 '해로즈'는 영국의 유명 백화점 '해로즈'의 자체 브랜드이다. 역시나 영국의 고급 상점답게 높은 품질의 홍차를 공급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해로즈의 잉블과 49번 블렌드는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로즈의 잉블은 일반 브랜드에 비해 좀더 가볍고 쉽게 마실 수 있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잉블의 무게감이 없지도 않다. 인도와 스리랑카, 케냐의 홍차가 섞인 전형적인 블렌딩. 예전에 썼던 시음기를 보면 '밸런스가 좋고 순하며, 입에 닿는 느낌부터 목 넘김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운, 말 그대로 smooth한 차'라고 되어 있다.


그에 비해 아침잠을 깨우는 역할을 좀더 잘하는 것은 49번 블렌드이다. 인도 여러 지역의 홍차를 섞어 만든 이 강렬한 차는 우릴 때부터 진한 아삼의 풍취가 느껴진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쓰거나 진하지 않고 맛의 균형을 잘 잡은 홍차라 어디서나 추천할 만 하다.



테틀리(좌), 딜마(중), 포트넘 앤 메이슨(우)


# 포트넘 앤 메이슨 로열 블렌드

차를 고를 때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는 포트넘 앤 메이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참고글: 초보를 위한 티 쇼핑 가이드)


그 중에서도 데일리 홍차로 그만인 스테디셀러가 바로 로열 블렌드. 사실 포트넘 앤 메이슨에는 '브렉퍼스트 블렌드'라고 이름 붙은 차도 따로 있고 웨딩 브랙퍼스트, 아이리쉬 브랙퍼스트도 있긴 하지만 로열 블렌드가 내게는 더 아침잠을 깨우는 데 적합했다.


#테틀리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국내에 매장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테틀리(Tetley)는 영국에서는 매우 많이 마시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국내에는 고급 홍차 브랜드 위주로 많이 들어와 있지만, 사실 영국 가정의 티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제품들은 거의 피지팁스(PG Tips), 테틀리, 요크셔 골드가 많았고 트와이닝스도 비싼 축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테틀리는 가격도 저렴하고, 그에 비해 괜찮은 맛을 낸다. 어차피 우유랑 설탕 넣을 거라 향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딜마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딜마'는 스리랑카에 본사를 둔 브랜드로, 연희동에 티룸도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는 닫은 듯? 


기본적으로 '잉블'이라면 인도산 홍차가 많이 들어간 쪽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딜마의 잉블은 그렇지 않더라도 매우 맛있다. 스리랑카의 지역 중 하나인 '딤불라'의 홍차로 만들었다고 한다. 스리랑카 홍차 중에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것은 '우바'지만, 일본에서는 '딤불라'도 못지 않게 인기가 있다고.



내일 아침에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로 시작하는 상쾌한 아침을 맞이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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