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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삼 May 09. 2023

공부가 건네는 위로

 10년 전, 나는 사회부 사건팀 기자였다. 내가 담당하는 서울의 어느 특정 구역에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곧장 현장이나 관할 경찰서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었다. 야밤에도 밤샘 근무를 하는 당직자가 1보(첫 보도)를 소화하고 나면, 담당자인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취재 바통을 이어 받곤 했다. 서울의 어느 건물에서 큰 불이 났을 때도, 경기도의 어느 곳이 폭설에 큰 피해를 입었을 때도 나는 당직자와 데스크 선배(직속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택시를 잡고 현장으로 뛰쳐 나갔다.


 사건 사고가 퇴근을 전후한 애매한 시간에 발생할 때도 근무 상황이 팍팍해지긴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일찍 출근했다가 퇴근했는데도,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해야 했다. 그러다보면 밤샘 근무로 이어지는 일도 허다했다. 구 남자친구(현 남편)와 맛있는 저녁을 먹자며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허름한 맛집에 갔다가, 사건 사고가 터져서 남자친구를 내팽개치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도 구 남자친구가 나를 내팽개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몸에 사리가 여럿 들어있는 것이 틀림 없다.)  

 

 당시엔 주52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때라, 나는 사건팀 기자를 했던 몇 년간 거의 매주 6일씩 근무했다. 주말 이틀을 오롯이 쉴 수 있는 기회는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돌아왔다. 정상적으로 출퇴근을 한 날에도 야밤에 출근하는 일이 툭하면 생겼으니, 몸과 마음의 피로는 날마다 포인트처럼 쌓여갔다. 사건 기자로서의 경험치가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나의 다크서클은 점점 더 길어졌고, 급기야 번아웃이 됐을 땐 이대로 단 하루라도 더 살았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그제서야 나는 업무시간 외에 주어진 내 짧디 짧은 자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린 끝에, 일단 잘 쉬는 법을 잘 아는 작가들의 제안을 따라보기로 했다. 퇴근할 때마다 틈틈이 서점에 들러 휴식에 관한 책을 읽은 후, 하루종일 잠도 자보고, 반신욕도 해보고, 요가도 해보고, 자전거도 타고, 무계획 여행도 훌쩍 떠나봤다. 그러나 이런 저런 제안대로 쉬어봐도, 내 마음 속 피로는 생각보다 단단한 탓인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분명 쉬었던 그 순간만큼은 잘 쉬어낸 것 같은데, 막상 다음 날 쳇바퀴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면 숨이 턱턱 막혀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피로는 비워내야 풀리는 피로가 아니라, 채워내야 풀리는 피로가 아닐까? 나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피로가 쌓였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업무에만 모든 시간을 쏟은 탓에 쌓인 피로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롯이 나만의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 쌓인 피로라면, 나의 마음 속 피로는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채워내야 풀릴 것이 분명했다. 업무로 소진된 나의 텅텅 빈 속을, 내가 원하는 새로운 에너지로 차곡차곡 채워야만이 비로소 피로가 풀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내가 막연하게 시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빡빡한 근무 여건상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존재를 떠올렸다. 그건 다름 아닌 공부였다. 내 업무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평소에 틈틈이 관심을 뒀던 특정 분야의 공부. 사실 일주일에 6일을 근무하는 나로서는, 만약 공부를 하게 된다면 유일하게 오롯이 쉴 수 있는 단 하루를 공부에만 쏟아야 하는 상황인지라 리스크가 너무 컸다. 연약한 몸은 아니지만,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과 공부를 병행해본 적도 없었고, 그럴 용기를 내볼만한 위인은 더더욱 되지 못했다.  


 하지만, 피로가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매일 매일이 완전히 소진된다는 느낌이 드는 일상이 계속되다보니, 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까짓거 일하다 죽으나, 일하면서 공부하다 죽으나 매한가지 아닌가? 어차피 인생 한 번뿐인데, 한 번 해보지 뭐. 이러나 저러나,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낫겠다 싶은 호기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무모한 용기를 냈고, 내가 관심있던 분야에 특화된 대학원을 찾아 사무처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대뜸 청강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큰 돈 들여서 등록하기 전에 청강부터 해보자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선 흔쾌히 청강이 가능하다고 했다. 단지 약간의 비용만 지불하면, 다른 대학원 수강생들과 동일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심지어는 과제들도 똑같이 제출할 수 있다고 했다(?). 혜택처럼 알려준 그 부분에 약간 마음이 멈칫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꽤 흡족했다. 그래서 당장 다음 주말부터 대학원 청강생으로 등록하겠노라고 했다. 약간의 돈을 계좌에다 넣고, 그렇게 나는 무모하게 부캐를 만들어냈다. 주 6일은 기자라는 본캐로, 나머지 주말 하루는 청강생이라는 부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역시나 예상이 적중했다. 일단, 나의 다크서클은 어마무시하게 길어졌다. 방학을 제외한 거의 8개월을 단 하루도 오롯이 쉰 적이 없었으니 당연히 예견된 결과였다. (청강생으로 시작한 공부정식 석사 과정으로 이어지면서 나의 다크서클은 더욱 더 길어지고 몰골은 초췌해졌다.) 하지만, 웬만한 휴식에도 풀리지 않던 내 마음 속 피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엔 활기가 대신 들어다. 활기라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기쁨만이 아니었다. 여러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똘똘 뭉쳐져서는, 새롭 일상을 살아내는 용기를 건네주는 그런 존재였다.

 

 그 존재 중에선 나조차도 잘 몰랐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간다는 뿌듯함이 었다. 만약 내가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에 대한 결론을 알게 됐다는 뿌듯함. 게다가 평소에 체력이 별로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실은 정신적 체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걸 알게 된 것도 또다른 뿌듯함 하나였다. 나는 생각보다 정신적 체력을 강하게 키울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 수록 몸의 체력도 키워낼 여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알지 못했을 사실이었다.  


 스스로를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토닥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 좁디 좁은 줄만 알았던 내 속에서도 어쩌면 다른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확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로는 과감하게 내질러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약간의 여유로움. 이런 여러 감정들이, 공부가 내게 건넨 위로자 용기였다.


 사실 인생의 공부라는 것꼭 가방끈을 늘리는 공부만 해당된다고 보진 않는다. 좋은 글을 읽고, 모르던 분야의 책 한 번 살펴보는 것도, 때로는 관심있는 분야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거나, 내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 ,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꺼내보는 스스로에 대한 공부이자 인생의 공부 수 있지 않을까.


 가방끈을 1cm 늘린지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애 엄마이자 워킹맘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때 공부가 건넸던 위로의 힘을 잊지 못한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소진됐던 내게, 새롭게 삶을 살아낼 용기와 희망이 되어줬던 그 힘을. 그래서 내가 언젠가 또 슬럼프에 빠졌을 때 스스로를 빼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또다시 공부가 돼주리라는 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부가 한결같이 건네 든든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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