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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삼 May 12. 2023

모두의 특권, 편지

 해외로 출장 가거나 여행을 갈 때 꼭 챙기는 나만의 굿즈가 있다. 편지지와 엽서다. 케냐에서는 현지 예술인이 그린 아프리카의 쨍한 색채가 담긴 엽서를, 뉴욕에서는 독특한 타이포그라피가 돋보이는 편지지를 고른다. 프랑스에서는 몽생미셸이 스케치로 그려진 중고엽서를, 체코에서는 프란츠 카프카의 사진과 필체가 담긴 엽서를 쟁인다. 한국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회에서도, 내 이목을 자꾸 끌었던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의 엽서는 웬만하면 꼭 소장한다. 지금 안 챙기면, 언젠가 해외 전시회에서나 구할 수 있는 레어템이 되니까.


 내가 엽서와 편지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들의 활용도가 가격 대비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 해외 어느 곳에서나 그림 작품 하나를 구입하려면 최소 수십 달러에서 수천, 수만 달러로 넘어가지만, 엽서와 편지지는 대개 0.99달러에서부터 시작한다.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디자인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특정 나라를 다녀온 기념으로 사기에도 안성맞춤일 뿐만 아니라, 종이 자체가 얇기 때문에 수납 공간을 차지할 일이 없다는 점도 퍽 만족스럽다.


 이렇게 쟁여놓은 엽서는, 책갈피로서도 요긴하게 쓰인다. 나는 하루에도 몇 권의 책을 번갈아가며 읽는 걸 좋아하는데, 그럴 때마다 각각의 책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엽서를 책갈피로 꽂아 사용한다. 엽서의 재질 자체가 뻣뻣하기 때문에 책을 구분하는 책갈피 본연의 역할도 충실히 해낼 뿐만 아니라, 잠시 독서를 멈추고 바라보면 하나의 그림 작품을 보는 듯한 효능감마저 들게 한다. 때로는 밋밋하고 퍽퍽한 사무 공간이나 집 곳곳의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고 싶을 때도, 엽서의 용도는 의외로 쏠쏠하다.


전시회에 들르면 꼭 그 작품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엽서를 두 장씩 챙긴다. 하나는 보관용, 다른 하나는 편지 쓸 용으로.


 물론 내가 엽서와 편지지를 쟁여놓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편지를 자주, 잘 쓰기 위함이다. 난 편지야말로 사람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제일 정확하게 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틈틈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긴긴 편지를 쓴다. 아, 그렇다고 편지를 엄청 자주 쓰는 건 아니고, 그래봤자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쓰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편지를 쓸 때만큼은 길게 길게, 오롯이 상대와 나 단둘이서만 마주앉아 재밌게 대화하는 기분으로 쓴다.


 그러다보면 직접 얼굴 보고서는 절대 하지 못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술술 나오기 시작한다. 가령, 친오빠에게는 이런 식다. "내가 맨날 오빠를 놀려먹는 재미로 살고 있지만, 실은 얼마나 오빠를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모른다. 오빠는 진짜 좋은 사람이고, 내가 존경하는 멋진 사람이다..." 이것은 내가 맨 정신으로는 절대 하지 못할 말이지만, 귀하게 모아뒀던 엽서와 편지지 앞에선 희한하게 시한부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난 그 때마다 손발 오그라드는 편지를 쓰고는, 오빠에게 휙 던져놓고 총총 사라지곤 한다.  


 어떨 땐 기성 엽서나 편지지로는 부족해, 내가 자체적으로 편지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아흔을 앞두신 할머니께 편지를 쓸 때가 그렇다. 할머니께선 눈이 침침하시기 때문에, 나는 문구점에서 4절 도화지 몇 장 산 다음 두꺼운 네임펜으로 편지를 큼지막하게 써서 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다 써놓고 보면 편지가 아니라 성난 대자보 같다는 데 있다. (과장하자면, "할머니 사랑합니다!"라고 쓴 것도 "사랑합니다! 투쟁!"으로 읽힌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할머니의 마음이 하해와 같이 넓어, 손주가 드리는 편지를 받고는 "글씨가 커서 시원하고 좋네"라며 흐뭇해하신다는 점이다.

  

 언젠가 편지와 관련한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게 기억 난다. "편지는 세상의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문학이다." 곱씹을 수록 맞는 말이다. 누군가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는,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 그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누구도 볼 수 없기 때문에, 편지에 담긴 이야기는 더 진실하게 더 깊은 감동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쓰는 사람은 받는 사람 덕분에 자신의 인복에 새삼 감사할 수 있고, 받는 사람은 쓰는 사람 덕분에 자기 존재 가치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편지야말로 발신인과 수신인, 우리 모두를 위한 특권 같은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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