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멀티버스
"축하해! 네가 우주를 낳았구나."
지난해 아들을 출산한 내게 숙모가 해주신 말씀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웃음이 났다. 아기를 낳으면 이렇게 멋진 인사도 들을 수 있구나. "그러게요. 살다보니 제가 우주를 낳는 날도 다 오네요." 만약 나에게 시 구절만 모아 놓는 유리 찬장이 있다면, 맨 앞에 올려다 놓고 보고 싶을 만큼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출산 직후라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했던 내게, 그 어떤 축하보다도 깊이 와 닿아서.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나, 이제는 알게 됐다. 숙모의 인사가 그저 유리 찬장에 고이 모셔놓을 시 구절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육아의 현실에 무지렁이 상태로 내던져진 초보자를 향한, 육아 대선배의 애정 어린 조언이자 예언에 가깝다는 것을.
숙모가 예견했듯, 나는 아들이라는 우주를 낳은 덕분에 예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새로운 우주와 매일 맞닥뜨리고 있다. 그 우주라는 건, 일단 시시각각 바뀌는 아들의 요구를 재빨리 충족시켜주는 민첩함이 생명인 곳이다. 우리 아들은 배가 고프거나 졸리면 가수 김경호가 된다. 고음 처리에 탁월하다는 뜻이다. 신속히 ‘맘마’를 진상하지 않거나 잠재우지 못하면, 시원한 고음을 계속 뽑아낸다. 그럼 듣는 가족들의 귀는 청량해지다 못해 이내 얼얼해진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의 고막과 아들의 성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맘마 진상 타이밍과 잠재우는 타이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 두 단계가 잘 마무리되면 이제 해우소 차례가 돌아온다. 10개월 차 아들은 기저귀를 차고 다니지만, 그럼에도 이 타이밍도 매우 중요하다. 자칫 기저귀를 가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면, 수습해야 하는 지뢰탄의 반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들이 신나게 포복까지 하는 날엔, 그 반경이 순식간에 바지, 이불, 거실 매트, 화장실 바닥으로까지 넓어진다. 그렇다고 수습 반경을 과하게 의식한 탓에 또 너무 일찍 갈아주는 것도 곤란하다. 자칫 갓 나온 따끈한 빵 같은 응가를 한 손에 쏙 쥐어보는, 묘하게 안락한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어서다.
게다가 이 육아라는 우주는 옷과 이유식, 침대 같은 의식주와 책, 장난감까지도 성장 속도에 맞게 바꿔주는 바지런함이 필수인 곳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기가 쑥쑥 크는 만큼 옷은 점점 작아지므로 제때 맞는 옷을 사줘야 한다. 책과 장난감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반짝하던 관심도 금방 시들해져서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한다. 물론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물려받거나 선물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의 의식주 쇼핑은 건너뛸 수 없는 통과의례 같은 존재다. 이 쇼핑을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한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새것 같이 깨끗한 물건들을 찾기 위해 시간과 품이 드는 건 마찬가지니까.
이러한 ‘의식주 교체’를 몇 번 경험하다보면, '나 이제 육아 좀 하네?'라는 자신감이 슬쩍 똬리를 틀기도 한다. 그럴 때 이 육아라는 우주는 또 한 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제 좀 적응됐나 싶어 앞으로 고개를 내밀면, 무려 19년 2개월의 세월이 펼쳐져 있는 걸 보여주니 말이다. (참고로, 19년 2개월은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육아 기간이다. 우리 아들이 만 20살이 되는 해까지 남은 기간을 뜻한다. 물론, 아들이 훗날 손주를 낳아 내가 돌봐줘야 한다면 그 기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그래서 나는 '육아, 해보니까 별 거 아니네'라는 식의 호방한 마음이 부풀 때면, 몇 억 광년 떨어진 은하계를 상상하듯이 내 앞에 놓인 19년 2개월을 잠시 떠올려본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두 손이 공손히 포개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육아라는 우주가 무지막지하게 힘들기만 한 곳은 또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도 이 세상에 애당초 태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 우주는, 예상치 못한 난리통의 연속에 정신이 혼미해지다가도 곤히 잠든 아들의 숨소리에 온 세상이 고요해지는 마법 같은 곳이다. 종종 아들이 뱉은 토를 뒤집어쓰고, 엉덩이에서 갓 나온 응가를 손에 쥐어보기도 하지만, 아들이 씨익 미소 지으며 잠든 그 순간만큼은 마치 마음이 뜨거운 팬 위에서 사르르 녹는 버터처럼 몽글몽글해진다.
쌕쌕거리며 잠든 그 오밀조밀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면 아들이 그 자체로 우주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우주라는 걸 깨닫기도 한다.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비유를 들자면, 내 책장에 있는 책 46권, 즉 내 염색체와 남편 책장에 있는 책 46권이라는 염색체 중에서, 어쩜 이렇게 예쁜 페이지들만 살뜰하게 골라내서 내 눈 앞에 짠 나타난 건지. 누대에 걸쳐 섬세하게 선별해온, 인간이라는 작은 우주의 설계도가 내 앞에 '우주 최강 깜찍이'로 구현되어 있으니 정말이지 우주의 신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육아를 멀티버스, 다중우주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싱글 라이프와 멀티버스 육아 라이프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이건 단순히 아들이 예쁘게 보여서만은 아니다. 지금은 오롯이 다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과거 나의 우주를 소중하게 가꿔주신 우리 부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이 분들을 소중히 품어주셨을 또 다른 수많은 우주들의 숨결을 생생히 내 삶 속에서 느낄 수 있어서다. 이렇게 현재에서 과거로 무수히 이어지는 아득한 별밭 같은 우주를, 그저 우리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씩 헤아려 볼 수 있고,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숙모가 내게 건넸던 '우주를 낳았다'는 인사는, 어쩌면 찰나 같은 삶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훤히 내다본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수많은 인연의 고리와 그 고리들을 소중히 다룬 수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벌거숭이의 나를, 육아라는 행위를 통해 처음으로 진정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죽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나는, 오늘도 그 한계를 까맣게 잊은 채 아들의 응가를 치우고, 맘마 메뉴를 고심하며 찰나의 영원을 만끽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아닌,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 우리 아들 앞에서.
# 대문 사진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SMACS 0723' 은하입니다. 2022.7.12.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