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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호레 Sep 13. 2021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잘 늙고 싶다. 자-알

 올해 여름은 유난히 날씨 예측이 어려웠다. 마른하늘에 갑자기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도 했고 내가 사는 지역엔 태풍이 유난히 자주 찾아와 언젠가부터 그의 이름 외우는 것을 자연스레 포기하게 됐다.


 오전에 내린 비로 부랴부랴 우산을 들고 외출한 날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느 날과 같이 갑자기 비가 우수수 쏟아졌다. 허둥지둥 혼자 우산과 실랑이하던 와중에 저 멀리 양손 가득 책을 힘겹게 들고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는 여학생에게 시선이 멈췄다.


- 뛰어가서 우산 씌워주면 나대는 걸까.. 간다면 뭐라면서 씌워줘야 하나.. 

- 내가 늑대의 유혹 강동원도 아니고..


 여러 잡생각이 스치며 내 안의 I(내향형) 기질이 풀가동해서 우물쭈물 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웬 아주머니가 나타나 엄청 자연스레 여학생에게 내리는 비를 막아주는 것이었다. 횡단보도가 끝나자 제 갈 길을 유유히 가는 그녀. 그 모습마저 소신 있어 보였다. 그 짧은 찰나에 그녀가 살아온 삶이 그려지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도 저런 아줌마가 되어야겠다.'


 내 업무가 유독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민원 전화를 받다 보면 어떻게 살아왔길래.. 또는 가족들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잘 늙어갈 수 있을까.



  몇 달 전 민원대에서 근무할 때였다. 한 아저씨가 입구에서부터 욕설이 가미된(?) 고성을 지르며 화려하게 등장하시더니, 제도에 대한 불만을 와다다 쏟아냈다. 그의 앞에는 내 맘속 민원응대능력 만렙 과장님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대화는 아슬아슬하게 흘러갔다. 30분쯤 흘렀을까. 만렙 과장님께서는 역시나 화난 민원을 마법처럼 잠재우셨고, 거의 심리 상담과 가까운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흘러나온 대화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욕설 아저씨는 부모님께 불리한 처분이 떨어진 것에 대하여 분노를 한 것이었고,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보살피기 위해 가족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셨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통성 없는 지침은 그를 불편하게 했다. 결국 원하는 것은 이루지 못했지만 욕설 아저씨는 아까는 화를 내서 미안하다 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민원대를 떠나셨다. 그의 화려한 등장에 눈살 찌푸렸던 것이 미안했다. 이 일을 계기로 행동 하나로 사연 많은 그들의 삶을 판단한다는 건 위험한 일임을 인정하게 됐다.



나의 마음속 바이블 '자존감 수업'에서는 말한다. 열등감의 시작은 편견이라고. 자신이 열등하다는 생각은 세상을 열등한 것과 우등한 것으로 구분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열등감을 근본적으로 버리려면 사람이든 무엇이든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열등감과 편견을 가지지 않는 어른으로 크는 꿈을 꾼다.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꿈이라고 칭해본다. 성별로, 학벌로, 재산으로 사람들을 줄지어 놓고 무식한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한 때(지금도) 내가 빠져있던 MBTI도 편견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소개팅을 받을 때도 얼굴은 보지 못하고 ISTJ와 ENFP가 상극이란 이유로 거절하는 일이 있다나 뭐라나. 나 또한 알파벳 4개를 명함처럼 품고 다니며 떠들어 대는 걸 즐겼다. 걔는 s라 현실적이야, 너는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니까 j일걸? 따위를 예측하며, 알파벳에 사람을 가두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또 맞추면 뭐라도 해낸 양 즐거워했다. 그러나 조직행동론의 대가인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의 교수마저 "MBTI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라며 혹평했다고 한다. 사람의 선천적인 기질을 나눌 수 있는 수준일 뿐 모든 사람의 유형을 16개의 알파벳으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하긴, 나도 날 잘 모르는데 알파벳 따위가 날 판단하다니 말도 안되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살아온 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때는  하루가 5 원쯤으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그때 당시 시급 6300. 저녁 아르바이트 5시간 했으니 51,500. 거기에다 버스비 1000원씩 왕복 2000원을 제하고 나면  하루는 5 원도  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만 하며 보내는  삶이 가치 없게 느껴졌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까? 괜히  월급에   근무 일수, 하루 일한 시간을 나눠본다. 조금 숫자가 커졌을  어마어마하게 나아진  없는 것만 같다.

     

 행운과 행복, 불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 인가‘ 에 행운, 불운, 부조리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헬렌 켈러의 일생을 말하며, 생후 열아홉 달 그녀에게 닥친 성홍열과 뇌막염은 불운이었으나, 부유하고 교양 있는 부모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 했다. 또, 행운과 불운은 불가피하나 한 번 큰 행운을 맞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온전히 안전하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 하였다.           


 나에게는 어떤 행운과 불운이 있었을까. 적어도 한반도에서 북쪽이 아닌 남쪽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행운이 아닐까 싶다. 착한 우리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서, 조그마한 중소도시에 태어나서 지나친 경쟁을 하지 않아서, 다양한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평범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아이에게 행운이라 여겨지는 부모이고 싶다. 내 자식이 나와 내 남편을 생각했을 때 가슴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아이를 만난 것도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겠지? 나의 작은 소망은 딸과 함께 출근길을 같이 하는 것.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서로의 하루를 응원하며, 서로를 만난 것을 평생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피식하게 되는 '없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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