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호레 Sep 29. 2021

겸손일까, 회피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에 대한 이상한 동경 같은 게 있었다. 가벼이 걸친 옷에 튀어나온 작은 실밥, 전기요금 연체금 몇십 원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저렇게 살면 손해는 안 보고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릴 적 나도 꽤 예민한 편에 속하는 아이였다. 사소한 말장난에 싸움으로 번진 적도 있었고, 무심코 던질 말에 큰 상처 받았다는 친구의 말이 틈만 나면 생각나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둥글게 사는 것이 최고! 라며 나를 잃어가고 있을까. 예민함과 나를 잃어가는 것을 반대의 뜻으로 정의할 순 없지만 어릴 적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세상에 너무나도 속 시끄러운 것들이 많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기 위한 훈련된 단순함 일까.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조금은 내가 안쓰러워졌다.


 나의 시선은 늘 정면을 향하지 않았다. 나의 눈알은 어디 관자놀이 언저리쯤 달려서 양 옆의 세상을 향해 눈을 바삐 굴리곤 했다. 이것 또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밥벌이로 훈련된 무능이지 않을까. 귀찮다, 피곤하다를 핑계로 '제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요~'를 시전 하며, 상대방을 갑의 위치로 두고 겸손을 가장한 편안함을 추구한 것. 그때의 안일함에 대한 벌이 지금 한꺼번에 휘몰아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버겁다 느껴진다.

     

 자신의 생각이나 결심에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엄청난 경험을 가졌다던가,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기 보단 자기 자신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에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것. 그런 생각을 가지기까지 충분한 고찰의 단계를 거친 것. 그것이 지금 가장 나에게 필요한 모습인 것 같다. 작은 성취들이 쌓여 자존감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어릴 때부터 숱한 작은 실패들을 거듭하며 나에 대한 스스로의 불신이 크게 자리 잡아버렸다. 크고 작은 성공들은 뒤로 한채 작은 실패들에 발목 잡혀있던 지난 날들. 앞으로의 목표는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것. 치열하게 나에 대해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증명하고 싶다. 지난 추석 가족들과 함께 본 '국가 부도의 날'에 나왔던 김혜수 배우님의 마지막 대사가 갑자기 생각나네..


위기는 반복돼요.
위기에 또 당하지 않기 위해선 잊지 말아야 해요.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항상 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저는 두 번 다시 지고 싶지 않거든요.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