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정의: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
20살 이후 경제적으로 독립해 혼자 먹고 살아가면서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태도는 물건을 바라보는 자세로 가벼이 시작하는 듯하더니, 내 삶 깊숙이 전염되었다.
워낙 대중적인 눈과 귀를 가진 사람이라, 남들과 다른 특이한 취향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가령 오래된 LP를 사모으는 사람이라든가, 출시 첫날 반드시 줄을 서서 아이폰을 사야만 하는 얼리어답터들이라던가. 확고한 자기 취향에 빠진 사람들이 멋져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그에 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을 좋아했다. 비슷하게 생긴 거라면 휴대폰도 최신형보다 보급형이 좋았다. 나한테 어울릴 거라고 확신이 드는 옷이 있어도 같은 가격으로 덜 이쁜 비슷한 제품을 2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후자를 택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한 끗 차이를 알지만, 모르는 척 할 줄 아는 재주가 생겼다. 그 간소한 차이보다 나의 잔고를 중요시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러나 가성비를 외치며 자잘 자잘한 것들을 빠른 시일 내에 소진한 덕에 잔고도 지키지 못한 슬픈 현실. 이로써 난 취향을 잃고, 텅장을 얻었다. 결국 이럴 거면 예쁘고 좋은 거 사서 오래 쓰지..
무엇보다 나의 취향이 옅어지는 건 매우 슬픈 일이었다. 비용 대비 효율을 내는 가성비들 사이에서 나의 취향을 찾는 일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성능을 내지 못하는 것들은 나에게 효용가치가 없다고 느껴졌는데, 흔히 일컫는 '이쁜 쓰레기'들이 나의 취향이 되곤 했었다. 그러나 이쁜 쓰레기들이 소비로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가성비가 무조건 잘 못 됐다는 건 아니다. 한 달에 많이 벌어야 100만 원 남짓하는 돈으로 월세, 식비, 교통비, 통신비, 학원비, 교재비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나에게 '가성비'란 사실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나는 내 현실에 맞게 나름대로의 살 길을 본능적으로 찾아나간 것일 뿐.
조그마한 손톱에 색칠하는데 몇 만 원이나 드는 네일아트는 살면서 양 사장님(친구) 에게 단 한 번 받아봤을 뿐이고, 2번 이상 고민하지 않고 3만 원 이상 물품을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느 더운 날 버스로 갈 수 있는 길을 택시로 간다는 것도 용납 불가. 물론 정말 하고 싶은 것은 굴찍 굴찍하게 쓰곤 했는데 그때의 소비가 없었으면 나 짠해 죽을 뻔.
이제 직장도 잡았겠다, 매달 귀여운 월급도 따박따박 들어오겠다, 어차피 남는 게 얕은 잔고라면 앞으로는 잔고보다 내 취향에 귀 기울여볼까라는 작은 다짐. 근데 돈 모아서 차도 사고 집도 사야 하는데.. 오늘 장은 또 왜 이렇게 퍼렇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