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호레 Jul 16. 2021

하고 싶은게무엇일까

20대 후반이 되어도 모르겠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느라 나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렵다. 내 모든 결정의 지분을 굳이 따지자면 주변의 평가, 환경 등 외부적인 것이 7할, 나의 선호가 3 할인 것 같다. 배려라는 보기 좋은 터울에 가려져 나의 생각은 희미해져 갔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상황을 당연히 여기는 나 자신이다.          

  어쩌면 나는 용기와 능력, 소신이 부족해 남들이 좋다는 기준에 따라 안정적인 노선을 택한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기준에 맞춰 어느 정도의 스펙을 갖추어 놓으면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          


  생각은 일부는 맞았고, 일부는 틀렸다. 평범함이 목표라면 나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나만의 색이 뚜렷한 , 남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이 목표라면 나는 실패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아주 흔히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야자 시간에 충실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장에 취업도  밥벌이 해내가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어딘지 모를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


내가 너무 애정 하는 어느 가을날


그들이 결코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핍된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순간 쉬운 것이 없었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 착실하게 살아왔을 뿐인데 "도대체 왜?" 라는 물음표를 그리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남들 보기 그럴듯한 기준들에 사로잡혀 자기 내면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것에 대한 벌과 같은 것이다. 내 삶에 작은 쉼표가 스며들어와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것. 명확한 나만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외부의 소리에 휘둘려 그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을 때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 그러다 삶의 가치를 더 넓은 집, 좋은 차에 두었다가 대출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

 그냥 조금  좋은 직장에 들어가 조금  돈을  벌어서 조금  비싼 집세, 할부금 내게 되는 것이다.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자 나의 가치의 기준을 직장에 두었을 뿐인데 이리도 아픈 고통을 주다니.







 


 어릴  유럽 여행의 로망에 빠져 읽었던 시절, 손미나 아나운서의 에세이 ’ 스페인, 너는 자유다 ‘라는 책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었다.  아나운서님이 새로운 책을 내셨다길래 그때의 기억이 나쁘지 않아  고민 없이 책을 구매했다. 그녀는 회사를 청산하고 떠난 휴양지에서 어느  아침 공허한 마음을 넘어 불행한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와 수많은 경쟁을 뚫고 많은 것을 성취해냈지만  살고 싶은 마음 앞에서   무력감, 불안, 좌절감 등을 느낀다. 흔히  감정을 ’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칭하지만,  명칭 안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속해있다.

 본인을 돌보지 못한 채 계속 달려왔기 때문에 생기는 병.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병.

                           

 이 책에서도 손미나 아나운서는 묻는다. 마음이 원하는 일,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 당신을 무엇을 했냐고.           


 우리는 앞에 놓인 현실에 얽매여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치며 살아간다. 가령 ’ 대학을 가면,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두고 자신의 행복을 미뤄둔다. 그러다 자칫 운이 안 좋아 타이밍이라도 놓치게 되면 나의 행복은 또다시 나중 일이 되고 만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안타까운 특징은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항상 불완전함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행복을 누리기보단 그 불완전함에 포커스를 맞춰 버린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어두운  등대 없이 항해하는 배는   길을 줄곳 잃는다. 내가 바로  배였다. 일렁이는 파도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작은 나룻배. 그렇다면 등대는 누가 어떻게 세울 것인가. 우리는 나의 등대는 무엇일까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곱게 늙어가고 싶다. 남의 의견을 잘 들을 줄 알고 사람들을 연민할 줄 아는 따스함을 가지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다. 남의 시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닌 내 사람들을 지켜낼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계산 없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 내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나의 등대는 무엇일까. 등대를 향한 나의 방향은 어디로 맞춰져 있을까.


 

그녀가 살아왔던 치열한 삶이 아름답다.




 

  어느 주말 학교 근처 카페에서 직무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20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학생  명이 들어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시켰다. 편안한 운동복 바지와 회색 후드, 질끈 묶은 머리가 누가 봐도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불러서 나왔어  연상하게끔 했다. 좁은 카페였기에 바로  테이블에 앉은 그들의 대화는 지나치게  귀에 쏙쏙 들어왔다.

  상반기에만 자소서를 30개를 썼는데 면접 한 번 못 갔다며 본인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것.

 아르바이트해서 100만 원 이것저것 공과금 30만 원, 월세 30만 원, 식비 15-20만 원. 스터디 카페 비용이 부담돼서 학교 도서관에서 주로 공부하다 정말 집중 안 되는 날만 몇 시간씩 끊어서 간다는 것.


 그녀들의 목표는 취업일 것이다. 모든 나의 행복은 취업 이후로 미룬 채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을 테지. 불과 1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누가 앉았던 흔적 없이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들도 예전의 나처럼 그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으려 한껏 움츠린 채 지금 자신을 갈아 넣고 있겠지. 그 노력이 헛된 수고가 아님을 믿지만, 그 과정에서 제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뭘 할 때 행복한지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처럼 헤매지 않기를.



그녀들이 지나간 자리. 쿠션마저 처음 있던 그 모양 그대로 정리되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