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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Nov 19. 2023

물부터 올려

친구 A가 문득 전화를 해 "음식 할 때 어떻게 하니?"라고 물었다. 뭔가 다른 할 얘기가 있고, 그 얘기의 빌드업으로 내게 묻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냥 '음식'이라고 하니 요즘 샌드위치나 싸지 그다지 요리를 많이 하지 않아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답이 늦어지자, 눈치 빠른 그녀는 재빨리 질문을 변경한다. "그러니까, 네가 찜닭을 한다고 생각해 봐. 그럼 뭐부터 할 거야?" 나는 "음... 일단 가스불에 물부터 올리고..."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정답이었나 보다. 그녀는 "그렇지? 난 네가 그렇게 할 줄 알았어." 무슨 얘길 하려고 하는 걸까?


A는 친구 B(우리 셋은 중학교 동창이며, 두 사람은 우연히 직장이 근처여서 하우스 메이트가 되었다. 나도 회사가 멀지 않아, 한 달에 두 번쯤 저녁을 같이 먹는다.)가 찜닭을 해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찜닭의 달인은 A이다. A는 손이 야무지고 요리를 잘하는 편인데, 특히 어릴 때부터 한식 파였던 그녀가 외국 생활을 하며 한국 음식을 사 먹기 힘들어지자 요리를 자주 하게 되며 더 잘하게 되었다. A가 가장 잘하는 요리는 찜닭과 등갈비 김치찜인데, 하루는 본인이 만든 김치찜이 너무 맛있다며 냄비째 우리 집까지 들고 온 적이 있다. 내게 먹어보라며, 이건 정말 전문점의 맛 아니냐며. 실제로 정말 맛있었지만, 나는 리액션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 A가 냄비째 들고 와 기대에 찬 얼굴로 맛을 보라고 했을 때, 이걸 어느 만큼 맛있다고 해줘야 할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A의 또 다른 대표 음식은 찜닭인데, 늘 A가 찜닭을 해주곤 하는 게 미안했던지, A가 회사에서 조금 늦게 끝나던 날 B가 찜닭을 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것.


사실 나는 A만큼 맛있는 찜닭을 할 순 없지만, 시판 찜닭 소스를 넣고 만들면 얼추 먹을만한 찜닭을 만들 수 있다. 아주 난이도 상급의 요리는 아니라는 이야기. A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B가 찜닭을 해준다고 했었잖아." 그건 나도 알 고 있었다. 나도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 B가 야심 찬 찜닭 계획과 장보기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B는 실은 A에게 찜닭을 시험 삼아 만들어 준 뒤, 주말에 부모님에게 만들어줄 계획이었다. A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퇴근을 해서 내가 찜닭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아직 물도 안 올려 놓은 거야!" 그날 B는 조금 일찍 퇴근해 5시 무렵부터 찜닭 준비를 한 것 같은데... 2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봐봐, 나라면, 그리고 너라면, 일단 물을 끓이고, 닭을 데치든, 아니면 그냥 바로 거기다 닭을 넣고 하든 그럴 거 아냐? 근데 B는 일단 채소를 하나하나 썰기 시작한 거야. B는 항상 그래. 일단 준비를 다 하고 시작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아 요리프로처럼?" "맞아. 그렇게. 그렇게 큰 소리를 치더니, 찜닭 결국 내가 만들었어. 너무 웃기지 않니?" 나는 문득 가족에게 찜닭을 해주겠다던 B의 계획이 떠올랐다. "그럼 B는 주말에 찜닭 어떻게 해?" A가 말했다. "안 그래도 B가 그 걱정을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3시부터 만들라고 했어. 그럼 할 수 있다고." B가 정말 3시부터 찜닭을 만들어, 주말 찜닭 계획이 성공했을지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오후 세시, 그녀가 채소를 썰기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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