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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Nov 19. 2023

무 하나 더 있어!

다음 주는 할머니 기일이다. 이제 돌아가신 지 2년인데, 아빠는 요즘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는 듯했다. 우리 할머니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분이랄까? 전국 팔도에 친구가 있고, 늘 스케줄이 꽉 차 있던 분이셨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금방 베프를 만들고, 나중에 그분들을 집에 초대하시고 말이다. 정말 인싸 중의 인싸 할머니셨다. 전형적인 할머니 상, 그러니까 요리 달인이고, 이런저런 먹을 걸 들이미시며 자꾸 먹으라고 권유하는 그런 다정한 할머니는 전혀 아니셨다. 우리 할머니 음식은 솔직히 맛이 없었다. 본인도 그건 인정. 우리 할머니가 요즘 태어나셨더라면 얼마나 더 신나게 사셨을지. 세계여행쯤은 그녀에게 어떤 꿈같은 존재가 아니라, 이미 완수한 미션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동생은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할머니가 꽃마차 타고 구름 위를 날아가는 꿈을 꿨다고 하더니, 이번에도 할머니가 너른 풀밭에서 뛰어다니는 꿈을 꿨다고 했다. 마침 아빠가 아침에 전화가 와서, 무 자르기가 괴롭다고 하소연을 했다는데 (김장 중), 여동생이 아빠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하자, 아빠가 좋아했다고 한다. 아빠가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전화가 길어지려는 찰나,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 "어디가! 무 하나 더 있어!" 기일은 기일이고, 할머니는 할머니고, 무는 무다. 김장은 김장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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