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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Nov 27. 2023

말은 쉽지

어제는 아는 동생에게서 밤 9시쯤 안부를 묻는 카톡이 왔다. 그녀는 그야말로 아는 동생이다. 우리 모두 유학 준비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유학 준비를 하는 한 영어학원에서 만났다. 난 당시 대학원을 준비 중이었고, 그 친구는 취업 준비를 하는 대학생이었다. 아마 2-3달쯤의 짧은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 유독 죽이 잘 맞아 학원을 마치고 가끔 아침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했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1년에 한 번은 만나 근황도 전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나는 마침 여수 여행을 다녀온 차여서, 여행 사진 1장과 함께 잘 지낸다고 답했다. 아마도 얼굴 본 지가 좀 되었으니, 약속을 잡으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와 만날 약속을 잡은 후에도 카톡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더니 급기야, "언니 전화해도 될까요?"라는 카톡이 왔다. '무슨 일일까?' 뭔가 재밌는 일이 있어 말하고 싶다기보다는, 고민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최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고민들도. 속사포로 쏟아내는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말 말할 곳이 필요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를 떠 올린 건 참 적절했단 생각까지. 가까운 사이는 오히려 고민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나는 그 친구와 적절히 가깝고, 적절히 멀다는 느낌.


들어주다가 나도 뭔가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마디 건네려는데, 정말 과거에 똑같은 고민을 하며 속상해하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말이 실은 하나도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것도. 그래서 그 대화는 음... 시간을 뛰어넘어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도 같았고, 나는 관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돌이켜보니 도움이 되었던 몇 가지를 그 친구에게 전해주면서 속으로는 '말은 쉽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할 때, 타인이 제시하는 '기본에 가까운' 그런 조언들을 무심코 따르다 보면, 내 문제를 제대로 마주할 용기 비슷한 것이 생기기도 하고, 조금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게 될 수도 있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녀의 복잡한 마음에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건넨 말들이 내 마음속 과거의 나에게도 함께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아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나쁠 땐 오히려 이런 날씨가 위로가 된다. 그 친구에게도 차가운 비의 차분한 위로가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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