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바쁘게 살던 시기가 있다. 당시에 일도 하고 대학원 입시 준비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도 잠이 깜빡 들고, 동생과 식당에 갔다 동생이 자리를 잠시 비운 새에 또 깜빡 졸고 그런 시기였다. 괴롭고 힘든 시기라기보다는, 몸이 고달팠지만 공부가 재밌었던 시기였다. 다만, 정말 피곤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반나절쯤 짬이 났다. 뭘 하고 시간을 보낼지 두근두근 했다. 오랜만에 자유시간인 느낌? 그렇다고 멀리 나가거나 그럴 시간까지 되진 않았던 것 같고, 뭘 할까 고민하다, 밀린 미드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연쇄살인범을 쫒는 드라마에 빠져있었는데, 몇 주간 정말 바빠 볼 시간이 없어서 에피소드 몇 개가 밀려있을 터였다. 신나게 드라마를 보려고 에피소드를 확인하는데,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볼 게 없었다.
그러니까 때때로 미국 드라마는 시즌이 이미 시작했음에도 휴방기를 갖는 모양이었는데, 그런 휴방기 때문에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송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난 그 휴방기를 이미 알 고 있었다. 그 휴방기를 감안해도 내가 2~3편쯤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모두 시청한 에피소드 밖에 없었다.
내가 그날 놀란 건, 그즈음 정말 바빠서 드라마 한 편을 통으로 볼 시간도 없었는데, 좋아하는 미드니까 그걸 틈틈이 10분씩 쪼개서 보았더란 것이다. 그날 깨달은 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따로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 그 바쁜 와중에도 난 그 미드를 챙겨서 봤다. 그래서 그 뒤로 영어공부할 때 항상 이점을 기억하려고 한다. 공부는 정말 쉽지가 않다. 그런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로 공부를 하면 조금은 덜 어렵고 덜 힘들어진다. 그래서 영어로 추리소설을 읽고, 영어로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도 읽고, 예쁜 영문 잡지를 구독하고, 재미있는 미드를 본다. 항상 기준은 내가 좋아하는 걸로. 남이 좋다는 글, 유명한 글, 잘 썼다는 글, 다른 사람들이 영어 공부에 유용하다는 그런 거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걸로! 적어도 내게는 효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