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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Nov 29. 2023

지금, 내 한계는 어디쯤?

어제는 회사 사람들과 떡볶이를 먹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밀가루 자제 기간이라며 "오뎅 많이!"를 외쳤다. 그녀가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것인지, 밀가루를 제한하는 것인지 물었더니, 밀가루라는 답이 왔다. 알고 보니 대학원을 병행하는 그녀가 학기 막바지에 이르러 업무에, 과제가 겹쳐 몸에 탈이 났던 것. 식이를 조절하라는 처방이 있었던 것 같고, 당이나 카페인, 밀가루를 제한하라는 지침을 받은 모양이었다.


떡볶이를 먹는 내내 그녀를 포함해 모두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깔깔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피곤한 기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일하면서 공부를 병행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대충 사정은 짐작이 됐다. 학업 때문에 일에 지장을 주면, 학교에 가느라 시간을 빼는 것이 (물론 본인 휴가에서 사용하겠지만) 눈치 보일 수 있어 일은 일대로 미리미리 해두어야 하고, 학교도 일한다고 내 사정을 다 봐주는 것도 아니니 과제도 발표도 소화해야 하니까.


혼자서라면, 스스로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분량의 일과 공부를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꾸역꾸역 소화하게 된다. 잘 시간을 줄여가며, 하고 싶은 것들을 참아가며. 그러다 보면, 엄청 뿌듯하기도 하다. 피곤한 가운데도 몸을 일으켜 이런저런 과제를 하고 나면, 내가 그래도 이만큼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 그러면서도 피곤함이 몰려오는 어느 날은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조금 지긋지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경우처럼 일과 공부를 병행할 때뿐 아니라 스스로의 페이스를 넘어서서 무리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이런 감정을 겪게 된다. 몸 어딘가는 조금 탈이 나기도 하고.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인다라고 말하나 보다. 때로는 그런 시간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한계를 발견하기도 하고, 뛰어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한계에 부딪쳐 좌절하기도 한다.


나를 돌이켜볼 때, 그렇게 치열했던 시간, 그러니까 내 한계가 어디인지 확인해 봤던 순간, 그리고 그 한계를 조금씩 확장했던 순간들은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게 한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때가 스스로가 정말 약해질 수 있는 순간이라는 점. 그 한계를 넘어 본다는 건 소중한 경험이지만, 또 그 과정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니까. 그래서 지쳐버린 나를 좀 보듬어줄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그녀에게 레모나와 맛있는 귤을 건넸다. 그녀에게 전한 응원일지, 아니면 어제 그녀를 보며 떠오른 내 모습에게 전한 위로일지, 그건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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