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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Dec 07. 2023

"헐" 말고 뭐라고 해요?

퇴근을 하고, 회사 사람 몇몇 과 저녁을 간단히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의 사회생활 언어를 줄줄이 꿰고 있는 지경이다. A는 이해가 안돼도 "헐", "어떻게", "대박"이라는 세 가지 말로 대충 다 때우는 식인데, 얼추 리액션이 들어맞아 잘 티가 나지 않는다. "어제 야근했어요. 요즘 일이 많네요." "헐! 어떻게!" 또는 "저 제주도로 놀러 가요!" "대박!" 이런 식. 그러나 그녀의 리액션도 가끔 고장 날 때가 있긴 하다. 드물지만, 저 3가지 말로 대응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기 마련이니까.


B는 "헐", "허허", "쉽지 않네요"로 대꾸를 하는데 "쉽지 않네요"는 생각보다 응용하기가 아주 좋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같은 의례적인 질문에도 "쉽지 않네요"라고 답할 수도 있고, 이번에 맡은 일, 최근 다녀온 출장, 새로 시작한 공부 대충 웬만한 질문에 "쉽지 않네요"라고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B가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쉽지 않네" 또는 "쉽지 않네요"는 우리 사이에선 유행어가 되고 있다.


그 자리에 있던 C는 항상 "하하!"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 헐! 너무하네!" 또는 "너무하네요!"를 남발한다. 그녀의 리액션은 그녀만 사용할 수 있다. 그녀처럼 "하핫!"하고 웃음을 터트려야, 완성되는 리액션이니까. 그녀는 누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왔다는 이야기에도, "헐 너무하네! 나는 안데리고 가고!"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녀가 약속시간에 조금 늦어 누군가 일찍 좀 다니라며 장난으로 타박을 해도 "헐! 너무하네!"라고 대답할 뿐이다.


그날도 저 셋은 자신만의 매뉴얼 리액션을 돌려 쓰고 있었는데, '저 사람은 저런 말을 맨날 쓴다'는 걸 인식하고 나자, 그 리액션만 나와도 크게 웃음이 터졌다. 그러다 문득 B가 이렇게 말했다. "요즘 Z들은 "헐" 안 한대요. 그거 쓰면 나이 들어 보이는 거래요." A가 물었다. "그럼 요즘엔 뭐라고 해요?" B는 "저도 Z가 아니라 몰라요"하며 크게 웃었다.


모두 요즘 Z들은 뭐라고 하는지 모른다고 함께 웃은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했다.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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