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3명의 남자분들이 모두 똑같은 디자인과 색깔의 등산복 브랜드 패딩을 입고 차례차례 출근했다. (참고로 이 사무실엔 남녀 성비가 4:6이다.) 세 사람 모두 호리호리한 체형이라 등장하는 모습이 조금 닮아 있어서, 데자뷔 같기도 해, 누군가 눈치를 채고 언급해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문제는 이 세 사람은 퇴근시간이 다 각기 달랐다는데서 시작한다. 연말이고 바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런저런 모임도 많아, 그 세 사람 모두 공교롭게 조퇴를 했는데, 그 시간이 다 달랐다. A는 오전에 바쁜 일만 처리해 두고 일찌감치 들어갔고, B는 3시쯤, C는 저녁약속이 있는지 5시쯤 퇴근이었던 것. A와 B가 모두 퇴근한 뒤, C의 퇴근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C는 옷걸이 앞에서 5분쯤 머뭇거리며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자 누군가 물었다. "5시 퇴근인데, 왜 안 가고 계세요!" C는 검은색 패딩에 팔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아무래도 옷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C는 팔이 반쪽밖에 들어가지 않고, 분명 패딩이 더 길었는데, 이건 A의 패딩인 것 같다고, 그가 본인 걸 바꿔 입고 간 것 같다고 말했다. B와 C의 키는 180을 훌쩍 넘지만, A는 170 중반쯤이라 본인보다 작은 사이즈일 거라고 추측한 듯했다.
사무실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A가 실수를 했나 보다며, 브랜드에, 디자인에, 컬러까지 같으니 헷갈릴 만도 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C의 유레카! 그 패딩이 본인 패딩이 맞다는 것. 그저... 그날따라 옷을 껴입고 온 것인지 팔이 뻑뻑했을 뿐이었다. A는 그저 본인 패딩을 잘 찾아 입고 갔을 뿐이고. 나는 다시 한번 우리 기억력이 믿을게 못 되는구나 하고 느꼈다. 아침에도 뻑뻑했을 패딩이, 아침에도 그만큼 짧았을 패딩이, 기억 속에선 허벅지를 다 덮고, 팔이 여유로운 패딩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