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2층 호텔방 뷰…)
이번 인도 출장 초반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일단 스모그가 심했는데, 안개도 안개였지만, 매캐한 탄내가 늘 목과 코를 괴롭혔다. 첫날 자고 일어나 보니 이미 목이 칼칼하고 눈은 간지럽고 그런 상태. 나는 통역을 해야 하니, 이러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아침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날, 인도 측에서 회의가 끝나갈 무렵 진하게 우린 티를 한 잔 권했는데, 이미 커피도 마신 상태여서 였을까? 카페인 과다로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다행히 회의가 마무리되었고, 인사말 정도 통역하면 되었다.
뱃속을 좀 채우면 어지러운 게 좀 가실 테니, 얼른 저녁을 먹고 호텔방에 누워있고 싶었다. 동료들과 근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우버를 불러 타고 이동하는 길, 한 사람이 제안했다. "저녁 먹고 호텔에 돌아오는 길에, 멀지 않은 곳에 쇼핑몰이 있던데 들렀다 올까요?" 또 다른 동료가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00(나)은요?" 나도 쇼핑몰이고 뭐고 머리가 빙빙 돌아 얼른 뭘 좀 먹고 누워 있고 싶을 뿐이었으므로 "아 저도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속으로 두 사람 모두 쇼핑몰에 가자고 했다면 꼼짝없이 쇼핑몰에 가야 했을 텐데, 먼저 괜찮다고 거절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 동료가 "그럼, 저녁 먹고 잠깐 쇼핑몰에 들렀다 오면 되겠네요."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아? 그의 "괜찮아요"는 "좋습니다"라는 긍정의 답이었고, 나의 "괜찮습니다"는 "저는 됐습니다"라는 거절의 표현이었던 것. 우리는 같은 말로 정 반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 ‘좋다’, ‘충분하다’, ‘적절하다’, ‘가능하다’, ‘상관없다’, ‘무사하다’ (출처: "괜찮다"의 의미와 의사소통 기능에 관한 연구, 조영보)
2. 한국어의 우회적 거절 표현 중 ‘괜찮다’와 ‘됐다’ (출처: 한국어의 우회적 거절 표현 연구, 이지선)
쇼핑몰에 대한 두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기는 어려워 그날 저녁을 먹고 쇼핑몰에 잠시 들렀다. 저녁을 먹으니 어지러웠던 것이 가라앉아 '괜찮아'졌고, 즐겁게 쇼핑몰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인도 쇼핑몰에서 Paul 빵집을 발견하고 주문한 밀크셰이크도 '괜찮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쇼핑몰에 가지 않았어도 '괜찮았'겠지만, 와도 '괜찮다'고 생각한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