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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Feb 14. 2024

친절한 악마

엉망진창 필라테스

어제저녁 필라테스는 친절한 "악마" 선생님의 수업이었다. 그녀는 정말 목소리가 예쁘다. ASMR을 녹음해도 되겠다, 라디오 DJ를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듣기 좋은 목소리인데, 말투까지 세상 친절하다. 그 친절한 목소리로 끝까지 운동을 시킬 땐 그야말로 친절한 악마. 


어제 수업 때 집중 마크를 당하게 된 건 한 50대 아주머니였다. 어제는 하체 운동에 집중했다. 아주머니가 힘드시니까 10번을 반복해야 하면, 마지막 2-3번은 쉬셨는데, 친절한 악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타박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옆에 가서 파이팅을 외치고, 한 번 더 할 수 있다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 아주머니는 이제 그만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앞에서 너무나 친절한 목소리로  "할 수 있어요!" "한 번만 더!" "파이팅!"을 외치니, 도리가 있나? "아이고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와도 끝까지 하는 수밖에. 그러자 선생님은 "정~말 잘하셨어요! 정말 많이 느셨네요!"라는 칭찬까지 아끼지 않으신다.


나도 저렇게 집중 마크 대상이 된 적이 종종 있는데, 눈앞에서 친절하게 응원하는 모습엔 나도 재간이 없었다. 차라리 욕을 하지....... 그럼 안 할 텐데......... 싶은? 그래서 절대 집중 마크 대상이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두세 번을 쉬면 절대 안 되고, 정 힘들 때 한 번 정도 빼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옆에서 응원하는 사태가 벌어지니까.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이 기대하는 바를 무시하기 힘든가 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한 번 더 할 수 있다고, 눈앞에서 외치고 있는 친절한 악마의 외침을 무시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기대가 뭐라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한 번 더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형태일 텐데, 이것밖에 못하냐는 질책보다는 이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필라테스 수업에서 배우게 된다. 


빡세지 않은 듯 빡센 친절한 악마의 수업을 듣고 나면, 다음날 근육통을 피할 수 없다. 하체 운동 덕분에 어기적 어기적 걸어 다니는 하루가 될 듯하다. 


(이미지 출처:챗GPT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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