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필라테스
어제저녁 필라테스는 친절한 "악마" 선생님의 수업이었다. 그녀는 정말 목소리가 예쁘다. ASMR을 녹음해도 되겠다, 라디오 DJ를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듣기 좋은 목소리인데, 말투까지 세상 친절하다. 그 친절한 목소리로 끝까지 운동을 시킬 땐 그야말로 친절한 악마.
어제 수업 때 집중 마크를 당하게 된 건 한 50대 아주머니였다. 어제는 하체 운동에 집중했다. 아주머니가 힘드시니까 10번을 반복해야 하면, 마지막 2-3번은 쉬셨는데, 친절한 악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타박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옆에 가서 파이팅을 외치고, 한 번 더 할 수 있다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 아주머니는 이제 그만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앞에서 너무나 친절한 목소리로 "할 수 있어요!" "한 번만 더!" "파이팅!"을 외치니, 도리가 있나? "아이고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와도 끝까지 하는 수밖에. 그러자 선생님은 "정~말 잘하셨어요! 정말 많이 느셨네요!"라는 칭찬까지 아끼지 않으신다.
나도 저렇게 집중 마크 대상이 된 적이 종종 있는데, 눈앞에서 친절하게 응원하는 모습엔 나도 재간이 없었다. 차라리 욕을 하지....... 그럼 안 할 텐데......... 싶은? 그래서 절대 집중 마크 대상이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두세 번을 쉬면 절대 안 되고, 정 힘들 때 한 번 정도 빼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옆에서 응원하는 사태가 벌어지니까.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이 기대하는 바를 무시하기 힘든가 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한 번 더 할 수 있다고, 눈앞에서 외치고 있는 친절한 악마의 외침을 무시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기대가 뭐라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한 번 더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형태일 텐데, 이것밖에 못하냐는 질책보다는 이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필라테스 수업에서 배우게 된다.
빡세지 않은 듯 빡센 친절한 악마의 수업을 듣고 나면, 다음날 근육통을 피할 수 없다. 하체 운동 덕분에 어기적 어기적 걸어 다니는 하루가 될 듯하다.
(이미지 출처:챗GPT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