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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Mar 26. 2024

새벽 3:45, 잊혀진 시차

오늘 새벽에 눈이 일찍 떠졌다. 창밖에서 창문을 때리며 규칙적인 듯 아무렇게나 인 듯 들려오는 빗소리 때문일 수도 있고, 어제 운동을 하고 자서 배가 고파 일찍 깼을 수도 있고. 더듬더듬 오른편 배게 아래에 둔 핸드폰을 찾았다. 아? 새벽에 보내온 카톡 알림이 메인화면에 떠 있다. 비몽사몽 누구인지 이름을 보려고 하는데, 이민 가서 살고 있는 학교 선배이름이다. 유럽에 살고는 있지만, 한국 시간으로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간엔 연락을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이지 싶어 마음이 쿵 내려앉는 느낌. 잠이 확 달아났다. 아? 그런데 다시 보니 비슷한 이름의 옆팀 회사 사람이다. 보낸 시간은 새벽 3:45분. 이 시간에 내게 카톡을 보낼 일이 뭐가 있을까?


이 시간에 카톡을 보내려면 어느 정도 급한 일이어야 하는 걸까? 속으로 생각해 봤지만, 가족들과 진짜 친한 친구들의 긴급상황이 아니고서는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전에 아래층에 알고 지내던 회사 동료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가 아침 7시에 전화를 걸어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야근을 밥 먹듯 하던 그녀는 새벽에 혼자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서는 내게 병원에 좀 데려다 달라고 전화를 했다. 당시 코로나가 심각하던 상황이라 119에 전화하기도 여의치 않았을 거다. 그 친구를 근처 응급실에 데려다주고 알게 된 건, 정신을 차린 지는 좀 되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7시까지 기다렸다는 것.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아무리 새벽이어도 전화를 해도 된다고 그 친구에게 걱정 어린 이야기를 건넸다. 이 정도 비상 상황에도 상대방에게 연락하지 못하는 건, 그녀와 내가 같은 상식을 공유한단 이야기겠지?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드디어 확인의 시간. 어느 정도의 중한 일로 연락을 한 걸까 하며 메시지를 확인했더니, 현재 출장 중이라며 간단한 내용을 번역해 달라는 요청. 조금 전의 놀람이 화로 바뀌었다. 오늘 오후 5시까지 보내달라는데, 8시간의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분량을 고려하면, 오늘 낮에 연락을 줬어도 충분할 일이었다. 내용도 정말 평이해서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도 충분한 일이었고. 단언컨데, 어디에도 시급한 내용은 없었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상식이 이렇게나 어긋나 버리니 당황스러운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도. 


아침에 출근해 일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시고, 이 무례함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순간, 메신저가 깜빡인다. "혹시 새벽에 00님한테 카톡 받으셨나요?" 아? 이런? 나 혼자가 아니었다는 건가? "네, 새벽 3시 45분에요 ㅠㅠ" 하자 그녀는 "저는 2시 30분에요..." 한다. 그녀는 지금 문제의 주인공과 같은 팀 동료로, 시답지 않은 팩트 확인을 요청받은 모양. 그즈음, 우리 팀의 또 다른 직원(현 출장자 업무를 해본 적 있음)은 새벽에 카톡을 받았는데 메시지를 다 지워서 무슨 내용인 지는 모르겠단 말을 꺼냈다. 일단 피해자는 셋 인 것으로.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이번 출장 준비가 미흡했고 현지에서 본인 팀장님에게 좀 깨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자 한국 시간이고 뭐고 고려 없이 여기저기 카톡을 보내놓은 것이고. 최고의 복수는 뭐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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