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람: 나를 구한 소리

by 레모몬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한 비밀 단체의 우두머리 격이었다. 다만, 실질적 보스는 비밀리에 존재하는 듯했고, 나는 그저 얼굴 마담 같은 존재로, 권한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단체를 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교도 집단이라고 할지, 어떤 신념으로 모인 집단이라고 할지, 그것도 아니면 어떤 이권을 중심으로 모인 집단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다만, 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이었다. 층고가 높고 화려한 공간에서 나는 그저 바지 사장 역할만 하면서 향락을 즐길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고급진 옷을 차려입고 누구보다 세련된 매너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대놓고 무시하지 않았다. 나에게 예우를 하는 듯 행동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고, 나를 배려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 물론, 실질적으로 그들이 내 위에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실제로는 권력이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주어진 향락을 마음껏 즐기며 그 자리에 만족하지도 않았다. 내가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포함해 누가, 무엇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일에 심드렁했다. 언제나 잘 차려입고, 신념과 이권으로 득실득실한 눈빛을 보이는 주변 사람들을 조금은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 화려한 공간 한편에는 겁먹은 눈동자의 사람들이 있었다. 대놓고 납치를 당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곳에 오게 된 사연 같은 것은 각기 다를지라도, 현재는 이곳을 떠나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 역시 잘 차려입고 있었지만 그 눈빛으로 확연히 구분되었다. 그들은 분명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지만, 동시에 떠나는 걸 두려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처음엔 그 겁먹은 눈동자나, 조심스러운 태도, 어쩔 줄 몰라하는 움직임 같은 것들을 보아 넘기는 것이 괜찮았던 것 같다. 그냥 ‘저 사람들은 여기서 나가고 싶구나’라는 알아차림은 진작 있었지만 나는 그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그냥 그 눈과, 태도, 움직임들을 반복해서 보게 될수록 점점 불편해졌다. 그 사람들이 내게 도와달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불편한 느낌이 목에 차올라버렸고, 나는 그들에게 슬며시 다가가 비밀스러운 소통을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난 음모를 꾸몄다. 내가 그 단체를 통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동안, 이곳을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티 안 나게 도망하는 것이었다. 계획대로 탈출이 진행되었다. 탈출한 사람들이 절반을 넘어서자, 더 이상 조금씩 몰래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알아차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에 그들을 모두 탈출시키기 위해 요란한 이벤트를 생각해 냈다. 그 계획을 위해 모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훌륭한 연기도 펼쳐냈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내게 감사와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그들의 대탈출과 동시에 나의 행각도 모두 들통이 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싱긋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침내 내가 그 단체의 지배자들의 시선을 붙들어 놓고 있는 시간 벽으로 가로막힌 옆 공간에서 난장판이 벌어졌고 그 소음을 들으며 ‘계획은 성공했네’라고 생각했다. 그 통제자들이 모두 의아함과 충격에 빠져 상황 파악을 하려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제 내 정체를 보일 때라는 걸 알았다. 속으로 무서웠던 것 같지만 태연하게 웃으며 일어서는데 굉장한 굉음이 들려왔다.

8시를 가리키는 알람이었다. 나는 엄청난 조직의 바지사장을 하다 잠에서 깼다. 친구에게 굉장히 스펙터클한 꿈을 꿨다고 이야기하자 친구는 말했다. “너 사장 안 시켜줄 테니까 걱정 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