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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Jul 22. 2023

택시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도시의 인상을 좌우하는 건 사람!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일이다. 방콕 출장이 있었다. 호텔에서 회의장소까지 그리 멀진 않았지만, 더위속에 걸어가기엔 어림없는 거리였다. 택시를 타고 한 10분쯤 가야 했다. 당시 출장 일행은 총 4명이었다. 아침에 회의장으로 출발을 하려는데, 동료 한 사람이 갑자기 처리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로비에서 노트북을 꺼내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와 후발대로 회의장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얼추 마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나는 물었다. "그랩(Grab: 택시 호출 서비스 앱)으로 택시 부를까요?" 택시를 부르는 건 누가 해도 상관없었지만, 회의 시작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가 유독 여유를 부리는 느낌이 들어 내가 약간 재촉을 했던 것 같다. 왜냐면 택시를 호출한다고 바로 택시가 나타나는 건 아니었고, 바쁜 출근시간이라 길이 막힌다는 점도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그 동료는 시글 벙글 웃으며, "택시 부르지 마세요. 앞에 나가면 택시 있을 거예요" 한다. 무슨 말이지? 이 호텔은 약간 방콕의 외곽에 있어서 택시를 잡기가 그렇게 수월한 곳이 아닌데... 밖에 나가서 그냥 택시를 잡자는 건가? 고민하는 사이 그 동료는 나갈 준비를 마치고 즐겁게 "갑시다!" 한다. 호텔 로비를 나섰다. 택시는 개뿔... 내 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큰길까지 가자는 이야기인 걸까? 덥고, 가방은 무겁고, 옷도 정장을 입어 벌써부터 힘든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호텔 정문을 나온 순간 택시가 한 대 서 있었다. 택시 기사님은 택시 밖에 나와 인도에 있는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셨다. '아? 여기는 항상 택시가 기다리는 장소인가?'하고 생각하는데 동료가 말했다. "정말 택시 있죠? 제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제야 전날 저녁 기억이 났다. "설마, 어제 그... 제가 사기 맞았다고 했던 그 택시예요???" 나는 믿을 수 없어 동료에게 물었다. 동료는 "네!"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전날 저녁에 내가 들은 이야기는 이거였다. 그날 참석해야 하는 회의 장소가 달랐던 출장팀은 둘씩 나눠서 움직였는데, 그 동료가 탔던 택시의 기사님이 요금을 현찰로 내자 거스름돈이 없다며 난감해했다는 것. 그 기사님이 제안을 했다고 한다. 내일 아침 호텔 앞으로 태우러 올 테니, 그것으로 거스름 돈을 대신하면 어떻겠냐고. 나는 이 얘길 들으며 "사기당하셨네요"하고 안타까워했었다. 요금을 두 배 내고 다음날 태우러 올 거란 택시 기사 아저씨 말을 믿고 있다니 순진하시구먼... 하고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생긴 일에 정신없이 호텔을 나설 때 난 이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택시에 탑승하면서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정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날따라 내 동료는 호텔을 늦게 나섰기 때문에, 그 기사님은 호텔 앞에서 30분 이상 기다리셨을 테니, 언제 나올지 모르는 승객을 위해 아침 시간을 허비하셨을 터였다. 회의장에 도착하자 기사님은 "free"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내 동료는 그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며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내가 사기당했다고 한 걸 반박하며 의기양양해했다. 내가 졌다. 그 택시기사님은 약속을 지키셨다. 내 동료가 옳았다. 


난 태국을 출장으로 처음 방문했는데, 태국은 음식도 맛있고 이런저런 볼거리도 있고 체험할 것들도 있지만, 이 기억,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이 태국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그 뒤로 태국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태국에도 다양한 사람이 살 테니, 그날 약속을 지켰던 멋진 택시기사님 같은 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태국은 적어도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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