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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Oct 10. 2023

안전하게 표현된 차별

지난여름 벨기에 출장을 갔을 때, 현지 주재원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벨기에 살이 이야기를 해주며, 내가 당시 묵었던 호텔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최근에 강도를 만나 지갑과 시계를 탈탈 털렸다는 것. 벨기에가 난민을 많이 받아들여, 그쪽에 일종의 난민 군락이 형성되었고, 그래서 우범지대가 되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 이런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은 챙겨주려는 마음에 치안이 좋지 않은 조심해야 할 지역을 알려주곤 한다. 비단 개인적인 경고뿐 아니다. 그 나라나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나 기사에서도 이런 식의 표현을 흔하게 발견하게 된다.


요즘엔 우리나라 안에서 특정 지역을 방문한다고 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동료가 구로 쪽에 일 때문에 한 달간 있어야 했는데, 그녀에게 그 동네는 위험하니 밤에 나가지 말라고(취미가 밤 달리기) 걱정을 전한 사람이 여럿이라고 한다. 


왜 어떤 지역을 위험하다고 하는지 들어보면, 그런 동네에는 대게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이민자가 많거나, 난민이 많거나, 또는 저소득층이 거주한다는 근거를 대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를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개인적인 경험담을 들어보면 소매치기라든가 하는 범죄 발생률은 높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때 “그 동네는 외국인이 많으니, 이민자가 많으니, 위험해요”라고 직접 말하는 건 인종차별적으로 들리니까 (물론, 직접 ‘그 동네는 난민이 점령해서 위험해요’라고 말하는 걸 최근 들은 적도 있음), 대신 ‘지역’을 위험하다고 표현하는 것인데, 결국 의미는 같다. 위험하다고 말하는 대상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니까. 묘한 것은, 이렇게 지역에 대해 차별적 발언을 하는 데는 굉장히 거침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같은 이야기인데도.


얼마 전 하루키의 에세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서 비슷한 에피소드를 읽었다. 미국 동부의 프린스턴 대학의 (하루키의 표현에 따르면) 지적 허영이 가득한 엘리트들(Snob이라고 표현, 그렇지만 하루키는 그들을 나쁘게만 묘사한 것은 아님)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차별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지역에 대해 차별적 표현(00 동네는 위험하다)은 쉽게 하곤 한다는 것. 


나 역시 소위 우범 지역에 발을 디뎠을 때, 즉, 그 사회의 또 다른 민 낯과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외국인 또는 그 지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방인으로서 우범지역을 미리 피할 수 있게 해 준 그런 조언에 감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표현 방식, 즉 어떤 지역을 “위험”하다고 쉽게 말하는 것(결국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옳은가?”하는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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