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k? 무슨 말이지?
당시 나는 경력이 얼마 안 된 초보 프리랜서 통번역사였다. 말레이시아의 한 시장 통역 의뢰를 받았다. 당시 그 시장님은 그 도시에서 발생한 사건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노트 테이킹을 열심히 하는데, 단어 하나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Leak." (새다, 새는 곳이 있다.(액체·기체가) 새어 나오다, 스며 나오다(pass)(out). (비밀 등이) 새다, 누설되다, 유출되다(transpire)(out).- 출처: 네이버사전) 내가 알고 있는 "Leak"의 뜻은 문맥에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곧 말씀이 끝날테고, 난 통역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귀를 열고 집중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거의 자포자기하려던 순간이었다. 나에게 아하! 모먼트가 찾아왔다. 그 시장님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분이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동남아 악센트도 조금 있는 분이었다. 그래서 "Lake [레이ㅋ]", 즉 "호수" 이야기를 한 건데, 내 귀에 자꾸 "leak [리ㅋ]"로 들린 것. 다행히 통역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 비재하다. 영어는 워낙 널리 사용되다 보니, 악센트도 다양하고, 또 그 나라만의 표현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그 순간 부족했던 건 뭘까? 청력일까? 귀를 더 쫑긋 세우고 들었어야 할까?
사실 그렇지 않다. 난 처음 "leak"로 잘못 들은 순간 당황해서 맥락을 쫒기보다 "leak"발음에 꽂혀버린 것. 시장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악센트로 leak 같은 "lake"를 발음하셨지만, 내가 "lake"를 결국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그 발음 때문이 아니라 문맥 때문이다. 그리고 "leak"가 맞지 않다는 걸 눈치챈 것도 문맥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할 때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은 공통적으로 귀가 아니라 머리로 듣는 거라고 이야기하신다. 청력이 예민해서 소리를 잘 잡는 게 아니라, 표현이나 문장 구조를 이미 '머리로' 익숙하게 알고 있고, '맥락'을 잘 쫓아가면 들린다는 것. 그래서 날짜나 요일에는 전치사 "on", 달이나 연도 표시에는 "in"이 붙는다는 걸 귀를 기울여 듣는 게 아니라 미리 알고 있어서 머리로 들으라는 이야기.
내가 공부를 하면서 나름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방법은 딕테이션(받아 적기)이다. 어차피 영어 공부는 그냥 많이 하는 수밖에 없는데, 내가 지금 뭘 모르는지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고 또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던 방법이다.
준비물은 영어 듣기를 할 음성이다. 토익이나 토플을 공부하고 있다면, 그 리스닝 파트의 녹음본들도 좋고, 영화로 영어 공부를 한다면 그것도 좋고,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많이 활용하곤 했었다. 분량은 30초에서 1분 정도! 그리고 반드시 그 스크립트가 있어야 한다. 나중엔 없어도 공부할 수 있지만, 처음 시도해 볼 땐 있는 편이 안심이 된다. 이제, 노트와 펜을 준비한다. 준비 끝!
1. 먼저 집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들어본다. 대강 어떤 얘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 이제 문장단위(가 너무 길다면, 구나 절 단위, 점차 호흡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다만, 단어 하나마다 음성을 멈추는 방식은 비추!)로 소리를 듣고, 받아쓰기를 해본다.
3. 스크립트와 맞춰보며 채우지 못한 부분, 잘못 쓴 부분을 확인한다(이때 빨간색 펜 사용 강추. 치욕스러울스록 겸손해진다.).
4. 이제 분석의 시간. 딕테이션을 해보면, 내 영어의 민낯이 그대로 보인다. 대충 알고 있던 것들은 전혀 쓸 수가 없다. 시제/단복수/관사/전치사 등 많은 곳에 숭숭 구멍이 나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5. 이제 발전시킬 시간! 비어있는 구멍을 확인했으니 채워야 한다. 그건 영어를 읽고 듣고 하면서 채우는 수밖에. 내가 뭘 모르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 후 읽기를 해보면, 문장의 요모조모가 눈에 쏙쏙 들어온다. 아, 이런 경우에는 이 명사를 관사 없이 사용할 수 있구나, 아 이 단어는 전치사 to를 사용하는구나, 이런 것들. 읽기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한 동안 이 방법으로 매일 딕테이션을 하고, 그렇게 만든 스크립트를 외우기를 반복했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번거롭다고 느낄 수 있고 한 문장 받아 쓰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다 보면 꽤 빠른 시간 내에 마칠 수 있다. 내 경우 40~50초 정도의 라디오 논평 같은 것으로 많이 했었는데, 외우기까지 딱 30분 정도가 걸리곤 했다. 그리고 노트를 확인해 보면 정말 확연히 보이는데, 빨간 글씨가 줄어든다. 틀렸던 문장 구조를 다른 곳에서 보면 머릿속에 쏙 들어오니까, 다음에 같은 문장 구조가 나오면 자신 있게 적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