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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Jul 31. 2023

날씨 진짜 좋아요!

더운데 덥지 않은 날.

이번 장마는 평소보다 더 힘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장마란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 꿉꿉하고, 퇴근 시간에도 비가 올까 알 수 없어서 아침이면 레인부츠를 꺼내 신을까 말까 고민하고, 비가 오지 않을 땐 더 습한 기운이 올라와서 쨍한 햇볕을 기다리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는데, 올해는 압도적으로 비가 많이 내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가 좀 멈춰주기를 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 


드디어 장마가 끝났다. 출근길 신호 대기를 하는데, 구름 사이로 퍼지는 햇볕을 보면서 '아 정말 오랜만이다'하고 감격스러운 생각에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일기 예보는 연일 35도 가까이 치솟는 한낮 기온을 알려주고, 폭염 경보 알림이 예사로 울려온다. 


며칠 전 나는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회사 근처 2층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창가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데, 한 동료가 창밖의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보면서 "날씨 진짜 좋아요!"라고 말했다. 나는"네! 정말 좋네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실은 날씨 좋다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창밖을 보고 있자니 눈부신 햇볕에 기분이 좋았다.


그때 길을 걷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해를 피하려고 손으로 그늘을 만들고, 손 부채질도 하고, 그늘에 몸을 숨기는 모습들. 불편한 감정이 떠올랐다. 내가 날씨 좋다며 무심히 폭염 경보 알림을 끄는 요즘 나는 실은 더위를 "체험"만 하고 있다. 에어컨을 켜고 출근 준비를 하고, 지하 주차장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출근을 하고, 사무실에서 식당까지 짧은 거리에서 더위를 잠시 느끼고, 쾌적한 식당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날씨가 좋다"라고 이야기한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했다는 누군가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편하고 안락하게만 지내다 보면, 더위도 추위도 모두 "체험"만 하고 살다가 보면, 금세 황당한 소리로 남에게 상처나 주는 그런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조금 불편해도 참아보자고 생각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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