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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Aug 07. 2023

그 친구는 아직 15살

고등학교 1학년 3월이었다. 같은 반 친구가 자살을 했다. 요즘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대응 매뉴얼이 있을 것 같은데, 당시엔 그냥 담임 선생님도 학급 친구들도 그냥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듯 입에 올리지 않았다. 


꽤나 오래전 일인데도 담임 선생님이 그 소식을 전하시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모의고사를 치르던 날이었는데, 그 친구가 결석을 했었다. 별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갑자기 어디가 아프겠거니 그 정도. 사실 아직 3월이었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시험이 끝나고, 종례시간을 기다리는데, 담임선생님이 그날따라 늦게 교실에 올라오셨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말씀을 하시려고 하시면서도 자꾸만 망설이셨던 기억. 웅성웅성 시끄러웠던 교실이 어느 순간 침묵으로 가득 찼고,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는 걸 분위기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두가 어느새 선생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초반쯤 되었던 담임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르셨다. "00 이가" 선생님의 그 떨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친구 이름을 잊었을지도 모르는데, 힘겹게 쥐어짜듯 입을 뗀 그 목멘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뭔가 더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지만, 최대한 돌려서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지? 하고 의아해하며 옆자리 친구와 눈을 맞춘 기억이 난다. 뭔가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정신없이 종례를 마치고 교실을 나가셨다. 좀 눈치가 빠르고 어른스러웠던 아이들은 알아듣고, 나같이 눈치가 별로 없는 애들은 두리번거리며 무슨 큰일이 생기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다음 기억나는 건, 그 애가 있다는 병원에 아이들과 찾아갔던 일이다. 어떤 대학병원 장례식장이었던 것 같은데, 도착했을 때 그 친구는 이미 없었다. 어린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장례식을 치르지 않기도 한다는 걸 그땐 몰랐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그 친구 자리에 하얀 국화꽃이 몇 송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 꽃과 그 친구 자리는 모두 정리가 되었고, 모두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학교 생활을 했다. 


실은 궁금했다. 왜 그랬을까? 또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내가 그 애의 그런 선택에 조금이라도 일조한 게 아닐지 그런 죄책감도 들었으니까.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미웠다. 그 사건으로 내 어린 시절이 끝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 들고 왁자지껄 떠들고 웃다가도, 한편으로는 그런 즐거운 순간이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 타임머신이 있으면 꼭 그 친구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면 그 친구랑 인사도 나누지 않아서 철저히 타인으로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실은 그 애 생각이 자주 떠오르곤 했지만, 그 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순 없었다. 내가 "금기"라는 단어를 몸소 체험했던 기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친구들 대여섯 명을 만나게 되었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번화가 거리를 함께 걷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그때 걘 왜 그랬을까?" 우린 모두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애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아무도 그 애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날 그 애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나누면서 팽팽했던 선 하나가 툭 끊어지고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난 그 애와 그 일을 잊고 지낸다. 그런데 가끔 책상 깊숙이 넣어둔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몇 년에 한 번씩 눈에 뜨이곤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그때 같이 찍은 사진이다. 버릴 수도 없고, 보기도 불편해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는데, 가끔 책상을 정리하다 발견하게 된다. 


요즘엔 그 사진을 보면 참 속상한데, 사진 속에서 과자를 먹고 있는 말괄량이 소녀였던 나는 지금도 회사에서 간식 먹는 게 즐거움인데, 그 애는 아직 15살이다. 내가 그 애를 구해줄 순 없었겠지만, 그래도 조금 힘낼 수 있도록 응원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15살 앳된 얼굴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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