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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Aug 18. 2023

두괄식으로 말해요

숨 넘어가는 팀장님 살리기

몇 년 전 일이다. 당시 팀장님은 (대부분의 관리자들이 그러하지만 유독)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때 같은 팀 직원 A는 느긋한 성격에 상냥한 말투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루는 외부에 출장을 나와있었고, 10분 후 회의가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심각한 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어떤 사안이 있어, 팀장님은 직원 A에게 그 일에 대해 묻고 있었다. 


"00님, 저희가 10분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일이 심각한지 아닌지만 일단 얘기해 주세요." 난 이 말을 듣고 웃음을 참아야 했는데, 팀장님은 원래 그렇게 친절한 사람도 아니었고, 말을 길게 하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직원 A가 워낙 기-승-전을 거쳐야 "결"을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미괄식 말하기의 달인인지라 미리 결론부터 말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팀장이 10분 내에 원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할 거란 걸. 그 일은 배경이 상당히 복잡해 보였기 때문에, 직원 A가 그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결론으로 갈 수 없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 A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을 좀 평소보다 빨리 했던 것도 같은데, 아마도 팀장님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 그렇지만 그로서도 기승전을 거쳐야 "결"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보였다. 


결국 그때 "기-승-전"을 다 거칠 수 없었기 때문에 "결"은 시작도 못하고 10분이 지나가 버렸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그 직원 A가 역량이 부족하거나 그런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난 사람이었고, 다른 직원들과도 잘 지내는 좋은 사람이었다. 다만, 그와 업무 얘기를 할 땐 인내심이 필요했다. 어떤 사안의 전체를 파악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조각 정보가 필요한 순간도 있는데, 그는 그 친절하고 상냥한 성품 때문인지 항상 배경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으니까.


회사에서 가끔 이런 미괄식 말하기 주의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인내심이 부족한 상사와 만나게 되면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걸 보기도 한다. 내가 만난 상사들은, 대부분, 결론부터 듣기를 원했다. 설명을 듣더라도 결론을 먼저 듣고, 그 후에 필요한 경우 추가 설명을 듣고 싶은 것. 거기다 두괄식으로 말하면 자신감 있어 보이는 효과까지! 회사에선 특히 두괄식으로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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