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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Sep 07. 2023

비상구 없는 협력: A님의 아재 개그 여행

우리 팀과 때때로 협력 업무를 하는 팀이 있다(넓게는 같은 회사, 좁게는 다른 회사). 최근 그 담당자가 바뀌었다. 전임자가 승진을 한 뒤, 다른 팀으로 이동을 하는 바람에, 그 자리가 갑작스레 공석이 되었고, 다른 팀에서 급하게 사람을 임시로 수혈해 왔다고 한다(그 자리에 정식으로 사람을 채우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듯). 문제는 그 팀에 요청하는 협력 업무가 평소엔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지 않는데, 이번 건은 시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전임자는 해당 팀에서 우리와 협력 업무를 꽤 오래 했던 사람인데, 보통 그 업무를 혼자 하다 보니 그 팀의 다른 직원들은 내용이나 절차를 잘 모르는 듯했고, 새 담당자(A)도 전혀 다른 업무를 했던 사람인지라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우리 팀 - 또 다른 팀 - 이야기의 주인공 (A)가 함께 회의를 했다. 회의장에 도착한 A는 "분명 바쁜 일 없다고, 몇 달만 도와주면 된다고 했거든요..." 하며 억울하다고 말했다. 심각하게 말하는 A를 보고 있자니 왠지 웃음이 났지만, 뭐 그건 A의 사정이고, 어쨌든 우리 팀의 요청사항을 이야기했다. A는 이 업무는 얼렁뚱땅 때우고 몇 달 후 본래 자리로 돌아갈 생각으로 보였는데 그게 어려울 것 같자 좌절했다. 그러면서도 그 얼렁뚱땅을 포기하지 않은 채 아재개그와 함께 어떻게든 이 난관을 넘어가 보려 애썼다. 


우리 팀의 담당자와 A가 함께 차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A가 이번 건의 보고를 어떻게 할지 물었다고 한다(즉, 보고 자료를 공유해 달라는 이야기). 우리 팀 담당자는 "구두 보고 할 예정입니다"라고 이야기했더니 A는 차에서 내리며, "아 그러시면 저는 신발로 해야겠네요." 남겨진 담당자는 방심했다 터졌다며 사무실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전했다.


A는 그 뒤로 매일 어록을 남기고 있다. 이번 일 관련 자료 요청을 해왔는데, 우리 팀의 담당자가 "곧 보내드릴게요." 했더니 "르브레터를 그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며 전화를 끊기도 하고, 우리 팀의 또 다른 담당자가 참고할 자료를 추가로 보내준다고 하자 "없는 살림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팀은 A의 어록을 나누며 크게 웃었는데, 그런 팀원들에게 팀장님은 "웃어 주지 말자!"라며 가볍게 구시렁거리셨다. A가 본인이 할 일을 자꾸 우리 팀에 요청하며 일을 대강대강 넘기려는 모습을 보이자 약간 짜증이 나신 것. 


그런데 우리 팀원들이라고 그걸 모를리는 없었다. A의 아재 개그에 웃으면서도 A가 역할을 다 해줄 수 있을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곧 출장도 같이 가야 하는데 A가 서포트해줘야 하는 역할이 꽤 크기 때문에 다들 걱정하고 있다. 그러다 누군가의 마음의 소리가 목소리를 얻어버렸다. "출장을 같이 가도 왠지 짐만 될 것 같아요." 그 이야기엔 모두 웃지 못했다. A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빠른 시간 내에 업무를 익혀주기를. 출장지에서 별일 없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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