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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Sep 07. 2023

맛있다 그 이상... 떡볶이집에서 세계 문화 체험

유럽부터 아라비아 반도까지

오늘은 팀원들과 유명하다는 떡볶이집을 찾았다. 이 근방에서 꽤나 알려진 즉석 떡볶이 집으로 식사 시간에 맞춰 갈 경우 웨이팅도 길고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느낌으로 불친절한 사장님이 시그니쳐인 집이다. 다들 갑자기 바빠져 정신없이 시달리고 있는지라 자극적인 음식을 원하기도 했고 오늘은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을 끝낸 후 피드백을 기다리는 상황이라 시간이 났던 것.


모두 소문만 무성한 그 떡볶이 집을 알고는 있었지만 가본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기대반, 얼마나 불친절하길래 하는 두려움반으로 출발했다. 떡볶이 회식을 떠나며 모두 즐거워했다. 얼마지 않아 허름한 떡볶이집 앞에 도착했다. 여름엔 손님이 덜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 들었는데, 마침 한 테이블이 비어있었고 줄은 서지 않아도 되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하려는데 사장님은 기다리라고 하신다. 그때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말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던 팀원 A가 말했다. "사장님이 주문을 받으러 올 때, 주문해야 한대요." 그녀는 실은 이 즉석떡볶이집 리뷰를 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 떡볶이 집이 순간 유럽으로 바뀐 순간. 서양에서 식당을 방문해 "저기요"하고 주문을 하려면 안되고, 직원과 눈을 마주치고 주문을 받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딱 그런 시스템. 사장님은 착석한 순서대로 주문을 받으셨다. 


"뭐 드시겠어요?"라는 질문에 팀원 A는 속사포처럼 주문을 쏟아냈다. 우리가 떡볶이 4인분을 주문하자 사장님이 "몇 명 인대요?"라고 되물으셨다. 팀원 B가 주차를 하느라 3명만 앉아있었는데, 4인분을 주문하자 물어보신 것. 팀원 A는 재빠르게 "4명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사장님이 끄덕하신다. 주문을 마치고 사장님이 주방에 가신 후 팀원 A는 말했다. "여긴 많이 먹고 싶어도 인원수만큼만 주문할 수 있대요"라고. 즉, 3명이 방문해 4인분은 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 사장님은 음식쓰레기가 나오는 걸 싫어하는 환경운동가이실지도. 


떡볶이는 맛있었다. 그런데 두둥. 나는 보고야 말았다. 바.퀴.벌.레. 작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다른 때 같았으면 조용히 나왔을 텐데, 사장님의 기세에 눌려 사장님에겐 말 못 하고) 옆 테이블에 이야기를 했다. "밑에 바퀴벌레가 있어요." 그 테이블엔 40대 초반쯤의 부부가 앉아있었는데, 화들짝 놀란 아내분은 남편분에게 빨리 벌레를 잡으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테이블과 그 테이블의 소란이 다른 테이블에도 분명 들렸을 텐데 모두 들리지 않는 듯 평온하게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남편분은 바퀴벌레를 잡았는데, 손님이 벌레를 잡아 몰래 버리는 상황을 지켜보며, '모든 것은 기세 싸움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식당에서 사장님의 기에 눌린 모든 손님들은 어느새 그 식당만의 룰 안에서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여기가 내가 아는 한국이 맞나, 위생을 신경 쓰기 어려운 개도국 어딘가가 아닐까... 하는 혼란스러운 느낌.


이제 계산을 하는 순간이다. 마침 사장님이 공기에 밥을 푸고 계셨다. 그. 런. 데. 우리의 세계 체험은 끝나지 않았다. 사장님은 밥을 푸고 나서 손바닥으로 꼭 밥을 꾹 누른 후 뚜껑을 닫고 계셨다. 그걸 목격한 팀원은 가게에서 나와 "모든 것은 사장님의 손맛이었습니다"라며 밥 푸는 과정을 설명했다. 방금 떡볶이에 밥 2그릇을 볶아 먹은 터라 우리는 "아 그래서 맛있었던 거구나"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손으로 밥을 집어 먹는 문화권이 어디더라....... 아랍?


우리는 작은 즉석떡볶이집 안에서 유럽식 주문 문화, 철저한 환경 운동가의 신념, 개도국 느낌의 위생 상태, 맨손으로 식사를 하는 아랍의 문화까지 모두 체험할 수 있었다. 오늘 떡볶이를 먹고 나와 누군가 말했다. "다시 방문하실 건가요?" 다들 "한 번으로 족합니다, 떡볶이는 맛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나도 같은 의견. 떡볶이는 맛있었지만, 다시 세계 문화 체험을 같이 하고 싶지는 않은 느낌. 다음엔 한국식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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