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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Aug 15. 2023

개미의 인생

발바닥을 두드리고,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고

6월에 한 임원(A)과 함께 출장을 다녀왔다. 하루는 현지에 주재원으로 나가있는 A의 대학 동기(B)와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 B라는 분은 한눈에도 좋은 분이었는데, 꽤나 바른생활을 하는 분으로 술도 마시지 않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 임원은 "그래서 얘랑 안 맞아"라며 농담을 하기도).


두 분은 꽤 오랜만에 만난 듯했는데, 나와 또 다른 직원이 열심히 먹기 바쁜 동안, 서로 근황을 이야기하고 계셨다. 그러다 B가 실은 한 동안 힘든 일이 많이 있었다고 담담히 이야기하셨다. 가족이 갑자기 아파 투병생활을 해야 했고, 커리어도 기대했던 것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했다는 이야기. 그러자 A가 마음고생했겠다며 위로를 전하셨다. 


A는 그러다 책에서 읽은 어떤 스님 이야기를 하셨다. 한 불교 종파의 스님들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데, 아침에 길을 나설 때 꼭 발바닥을 두드려 그 걸음에 혹시나 다칠 개미를 걱정하고, 지팡이로 땅을 두드려 개미와 같은 미물들이 다치지 않길 바란다는 것. 그러면서 개미 입장에선 얼마나 날벼락이겠냐고 덧붙였다. 그냥 오늘 식량을 구하러 길을 나선 것인데, 갑자기 밟혀 죽기라도 하면, 개미는 아무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할 거라면서. 


난 여전히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A는 "우리 인생이 그런 개미지 뭐" 한다. 우리에게 닥칠 위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루를 살다 그저 다가오는 불행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개미의 인생이라는 것.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언제 병들지, 어떤 사고를 당할지, 그리고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하루를 살다 힘든 일이 닥쳐 내 인생이 송두리째 휘둘리게 되면 그렇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니.


그래서 나는 먹던 스테이크를 더 열심히 먹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열심히 먹어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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