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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Mar 04. 2020

코로나 시국, 나도 전혀 그대로는 아니다.

솔직히 좋았습니다만......

일찍부터 서둘러 몇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기는 고등학교 때 플래카드를 고이 모시고 앞자리 사수에 나섰던 농구대잔치 말고는 기억에 없다. 연예인을 열정적으로 덕질한 적 없고 스마트 기기가 새로 출시되면 일단 손에 쥐고 봐야 하는 얼리어답터도 아니니,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닐 바에 딱히 그럴 일이 있었겠나. 그런데 현 시국에 마스크는, 말하자면 죽고 사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마스크 없이는 출근을 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구해야 했다. 늦잠이 간절한 놀토(한 달에 한두 번 뿐인 쉬는 토요일)였으나 7시에 집을 나와 세 시간을 추위에 떨었다. 그래도 샀으니 다행이었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을 때 주말 저녁 약속을 취소한 정도가 코로나19가 내 일상에 미친 영향이었다. 이후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줄 알았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처럼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개학이 미뤄져 집에서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있는 학부모가 아닌데다 아직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를 시행하지 않으므로 출근도 꼬박 한다. 그렇지만 또 전혀 그대로라고는 할 수 없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회사가 취한 조치들은 1월만 해도 메르스 때와 비슷했다. 사업장 게이트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되고 구내식당이나 회의실 같은 공용 장소에 손세정제가 놓였다. 확진자 수가 두 자리가 되자 주 2회 건물 방역을 시작했다. 팹 특성상 사무실에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오피스 시간 중 임의로 직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이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았다. 마침 아카데미 4관왕을 한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을 들어 사무실에 그냥 있으면 함께 소독이 되지 않겠냐는 농이 오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확진자가 급증한 주 주말, 분위기는 달라졌다. 마스크 상시 착용을 강제하는 내용의 공지 문자가 뿌려졌다. 온라인 회의로 대체하는 등, 회의 간소화 지침도 내려왔다. 식당은 사업부 별 시차제를 시행하고 테이블 의자들은 서로 어긋나게 놓였다. 모든 휴게실은 폐쇄되었다. 이밖에도 여럿, 입사 이래 이런 사업장은 처음이다.


그러나 실제 업무가 이뤄지는 사무실은 본연의 사무실 그대로였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서 각자의 모니터를 보고 있는 풍경이야 낯설지만 여전히 공장은 돌고, 공장이 돌면 엔지니어는 할 일이 넘쳐난다. 수시로 코로나 관련 공지가 날아오는 것과 언뜻 무관해 보일 정도로 사실 직원들은 일하느라 정신없다. 그러니까 내가 코로나를 제대로 실감한 것은 회사에서가 아니었다. 주말 연휴였다. 마스크 대란에 나섰던 것이 물론 그랬다. 그런데 그보다 그것이 이틀간 유일한 외출이었다는 것이 진짜였다. 주말을 이용해 취미 생활을 하거나 인간관계가 넓어 늘 약속이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지만 밖에 나갈 일은 언제나 있다. 정말 아무 일정이 없어도 주일에 교회는 가니까. 그런데 예배마저 취소되었다. 내내 뒹굴다 졸리면 자고, 또 ‘배고프면 먹고’...... 에서 제동이 걸릴 줄이야. 평일에는 삼시세끼 대부분 회사에서 해결하고 주말에도 외출을 하면 식사를 하고 돌아올 때가 많으므로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는 일주일에 한두 번뿐이다. 요리는 재주도 취미도 없는 내가 그 한두 끼를 위해 음식을 직접 만들 리는 없고 엄마가 수시로 햇반과 밑반찬을 쟁여 놓고 가신다. 그런데 이 코로나 때문에 엄마의 발길도 끊긴 지 오래였던 것, 이틀 내내 인스턴트만 먹을 수는 없어 글쎄 내가 백만 년 만에 밥을 했다. 지인에게 얘기했더니 밥이 제대로 되긴 했냐며 그 밥통, 유휴설비 아니었냐고.


밥을 직접 지어먹고 내친김에 살림 모드가 되어 집안 여기저기를 들쑤시고도 시간이 남았다. 오랜만에 책도 읽고 벼르던 드라마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구나.(밥을 직접 했으니 오히려 부지런해졌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참으로 좋았다. 주말이 끝나는 게 아쉬울 만큼. 이런 여유를 누려본 지가 너무 오래였으므로. 그러나 코로나 때문이라는 사실이 좋아만 하게 두지 않았다. 다음 빨간 날에도, 그다음 빨간 날에도 이렇다면...... 


개학이 또 2주 미뤄진 학생들을 생각한다. 학교, 가고 싶을 것 같다. 그들의 부모님들도 생각해 본다. 육아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종일 아이와 집에만 있는 게 보통은 아닐 것 같다. 준비 없이 재택근무에 들어간 사람들은? 조금 부럽기도 하다. 종일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숨이 막히므로. 그렇지만 어쩌면 출근을 바라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각자의 이유로 누구는 출근을 바라고 누구는 재택이 계속되었으면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코로나19가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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