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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Mar 11. 2020

'미안해, 아껴줄게'

내 몸에게 하는 고해성사

세상모르게 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십 분만 더 잔다는 것이 잠결에 알람을 맞추길, 십 분이 아니라 한 시간 십 분 뒤로 설정한 것이다. 속전속결로 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삼십 분 이상 늦었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주차장에서 호기롭게 스마트키를 눌렀다. 어라, 소리가 안 난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곳이라 차는 눈으로도 금방 찾았지만 가까이에서도 여전히 반응이 없다. 스마트키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것이다. 수동으로 문은 열었는데 키가 방전되었을 때 시동 거는 방법을 몰라 또 한참을 헤맸다. ‘안 그래도 늦어 급한 날, 하필 이럴 게 뭐람.’


2월 초 청첩장을 하나 받았는데 맨 아래 계좌번호가 적혀 있어 조금 놀랐었다. 그런데 2월 22일 예식 당일, 동료들은 “OO는 이 사태를 예견했던 게 아닐까?”라는 농 비슷한 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풍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경조사가 또한 그렇다. 지난 주말 부서 게시판에 부고가 올라왔고 장례식장은 경상도였다. 안타깝지만 부의금은 인터넷 뱅킹으로 보내야 했다. 어라, 오늘만 두 번째다. OTP 기계도 제 명을 다했다. ‘원 참, 타이밍도 절묘하지.’




스마트키도, OTP도 배터리 수명이 얼마인지조차 가늠되지 않는다. 몇 년을 썼는지 기억도 정확히 나질 않으므로. 그러니까 닳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소모되고 있었고 완전히 방전되기 전에 관리해 줬어야 했다.


그런데, 표는 잘 나지 않지만 틀림없이 닳고 있는 것이 기계뿐일까. 우리는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 몸은 오늘도 쇠하고 있다는 것을. 기계는 배터리만 새것으로 교체하면 금세 회생시킬 수 있지만 건강은 때를 놓치면 그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는 것까지도. 지금부터 하려는 것은, 그럼에도 무심했던 주인 탓으로 닳고 닳은 내 몸에게 하는 고해성사다.




언니네 더부살이하던 사회생활 초기, 주인집 아씨들은 나를 신데렐라 이모라고 불렀다. 유리구두가 꼭 맞을 법한 조막만 한 발을 가져서는 아니고 얼굴이 예뻐서일 리는 더욱 없다. 별명의 이유는 밤이든 낮이든 늘 12시에 임박하여 집에 왔기 때문이다. 당시 10시 30분 막차를 타고 퇴근하면 잠실에 11시 20분쯤 도착했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면 분침은 숫자 10과 12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그나마 잠실에서 집까지는 가까운 편이었지만 야간 근무일 때는 아침 9시쯤 겨우 사무실을 나와 양재로 와서는 집까지 지하철만 또 한 시간여를 타야 했다. 도착하여 시계를 보면 낮 12시. 그때 나는 내 몸을 건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해야 하는 줄 알았고 딴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느 해 연말정산을 하는데 의료비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일흔이 넘으신 엄마의 것보다 내가 쓴 비용이 더 많았던 것이다. 엄마가 건강하셔서 병원 신세를 조금만 지신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나는 참 자주도 병원에 간 셈이었다. 물론 그 모든 비용이 진짜 ‘아파서’에 해당되지는 않았지만, 자기 병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어르신들 말씀처럼 사실 내 몸이 닳고 닳았다는 것은 스스로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만성 소화 불량까지는 거론할 차례도 안 올지도, 휴일이면 죽은 듯이 쓰러지는데 무슨 말을 더할까.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체육시간에 스탠드석으로 빠지는 친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도시락 반찬만 봐도 내 것보다 훨씬 고단백이던데 도대체 왜!’ 공 던지기에서 공을 코앞에 떨어뜨려 최하점을 받고도 나머지 종목에서 웬만큼 모두 만회하여 기어이 체력장 만점을 받아내던 게 나였다. 그러니까 기술이 필요한 것은 혹 잘 못해도 체력은 어디 빠지지 않았다. 오천 미터 장거리 대표 선수로 나서기도 했으니 천 미터 오래 달리기를 뛰고 헥헥거리는 친구들보다 진짜 체력만큼은 보통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몸이 약할 수 있다.’는 걸 이해했을 리가. 더욱 저질 체력의 나는 상상해 본 적도 없다.


말하자면 변명이다. 내 건강도 상할 수 있는 줄을 나는 정말 몰랐다. 당장 표가 나지 않아도 그게 뭐든 쓰는 만큼 채우지 않으면 결국 마이너스라는 것은 불변의 섭리다. 더 빨리, 더 많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설사 당시 정말 필요한 열정이었다 하더라도 몸은 챙겨가며 했어야 했다. ‘건강’은 결코 ‘딴’ 생각이 아닌데, 그때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지금은 퇴근 버스에서 내리면 집까지 걸어 5분이다. 동네까지 데려다주는 노선이 생기기도 했고 노선에 맞춰 정류장 근처로 독립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처럼 매일 10시 30분 막차를 타지도, 또 야간 근무도 더 이상 서지 않는다. 근무 환경이 나아진 것이 소극적인 변화라면 적극적인 내 몸 챙기기도 하게 되었다. 집에 오면 침대에 쓰러지기 바빴던 시절에 비해, 퇴근이 당겨진 만큼 운동을 시작했다. 남들이 들으면 운동 축에도 안 끼워 주겠지만 자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작년 여름부터는 주중 두세 번 삼사십 분씩 뛰기도 했다. 솔직하자면 겨울이 되면서 춥다는 핑계로 쉬었는데 3월이 되었으니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뛰지 못하는 때는 대신 퇴근 버스에서 두 정거장 먼저 내린다. 집까지 정확히 삼십 분 걷는 게 된다. 먹는 것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 메뉴를 고를 때 밀가루를 의식한다. 물론 한결같이 너무 맛있기 때문에 완전히 끊지는 못하지만 셋 중 한 번은 참는다. 영양제도 먹기 시작했는데 매일 잊지 않는다는 게 여간 부지런할 일이 아닌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맞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그렇지만 미처 도망가지 못한 비실비실한 소라도 지키려면 그제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목 디스크 판정을 받고 손 끝까지 저려 운전대를 잡기조차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매일 단 십여 분 스트레칭이 도움이 되었다. 이미 많이 닳고 닳았지만 이제라도 그 속도를 조금씩 늦춰야 한다. 어느 날 완전히 방전이 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몸에게 감히 늦은 사과와 다짐을 건넨다. ‘미안해, 아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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