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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Sep 25. 2019

뭐 하는 거야, 애도 안 낳고

제 의무는 성실히 다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결혼 안 하셨죠?...... 출산율이 결국은 우리나라를 말아먹습니다......”


“인구 감소가 큰 문제라는데 뭐 하는 거야, OOO는 애도 안 낳고”


전자는 얼마 전 논란이 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현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의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이다. 후자는 해당 논란이 있기 열흘 전쯤 공식적인 중간책임자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내 상사가 한 말이다. OOO는 나다. 나는 싱글이다. 마지막 연애는 서른에 끝났고 이십 대에 했던 연애들은 어디 말 꺼내기 창피할 만큼 서툴렀기에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비혼주의는 아닌데 미혼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정갑윤 의원 논란과 유사한 상황을 앞서 겪은 셈이다.


‘나에게 출산이라니, 농인가? 농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럼 진짜 훈계인가?’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당황했다. 그런데 내가 표정이 굳고 말문을 닫으면 어색해질 분위기가 더 불편할 것 같았다.


“대신 세금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연애에 소질이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으나 기어이 결혼을 하겠다고 억지스러운 노력을 하지는 않은 채 시간은 흘렀다. 결혼을 재촉하는 오지랖들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 때도 함께 지나갔다. 이제 내가 혼자인 것은 나도, 주변인들도 대수롭지 않다. 다만 한 분 빼고. 엄마는 최근까지도 내 결혼을 포기하지 못했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어쩌면 지금도 내려놓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말이 나오면 짜증부터 냈지만 그때마다 나는 불효 낙인을 받는 심정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는, 엄마 세대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을 살지 않고 있는 탓에 나는 약간의 죄책감이 있다.


우리 회사는 복지가 좋은 편이다. 대기업으로서 브랜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보통 이상일 것이다. 나는 그 모든 혜택을 다 누리지는 못한다. 가족의 의료비 지원은 직계비속만 해당된다. 우리 엄마도 자주 병원에 가시지만 회사에 비용 청구를 할 수 없다. 임직원 결혼기념일에 선물도 준다. 사내 부부는 두 개 받는다. 당연히 나와는 무관한 복지다. 작년인가 회사 복지 정책이 개편되어 공지되었다. 대충 보아도 열 개는 넘는 항목이 있었는데 내가 새롭게 받게 되는 수혜는 하나였나, 두 개는 해당되었나 가물가물하다. 대신 출산, 육아와 관련된 정책은 여럿 개선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배우자 출산 휴가는 내가 입사했던 십여 년 전 3일이었는데 지금은 열흘이다. 예정일보다 한참 먼저 태어난 동료 아기 덕에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주말 합쳐 2주를 백업한 적이 있다.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비슷하게 벌지만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월급명세서를 까 보지는 않았으니 심증일 뿐이지만 세금이 산출되는 법을 조금만 따져보면 신뢰도는 꽤 높을 것이다. 연말정산이 나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데 엄마 한 분 겨우 부양하고 있는 싱글이 받을 수 있는 공제는 정말 몇 없다. 뱉어 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전에는 억울해서 분을 냈었다. 이 회사가, 이 나라가 도대체 나에게 해 주는 게 뭐가 있느냐고, 주는 거 없이 가져가기는 왜 그렇게 많이인 거냐고 말이다. 그러나 고령화 시대에 정책 방향은 출산 장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모두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임 여성이나 아이를 낳지 않았으니 대신 내가 낸 세금이 출산 지원에라도 보태지기를,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데 나의 세금이 노인복지에도 아주 일부 쓰인다면, 나라에 책무를 다하고 엄마에게 그렇게나마 불효도 조금은 갚는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이 생각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대신 세금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고 다음날이 되어도 그때의 상황이 안 잊히고 자꾸 생각이 났다. 찝찝한 마음에 조사를 했다. 나와 같은 싱글, 딩크족, 아이를 원했으나 갖지 못한 난임, 주변에 가장 흔한 4인 가족, 그리고 다둥이 엄마까지, 나의 수배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대상자를 선정했다. 묵묵부답부터 일 초도 걸리지 않은 “미친”까지, 강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같은 맥락의 반응, 나는 ‘뭣 같은 말’을 들었던 것이다. 상사의 말은 몰상식이었고 나의 불쾌는 당연했는데, 그런데, 나의 대답마저 적절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과 출산은 의무가 아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납세의 의무를 다할 뿐이다. 합리적으로 책정되었든 그렇지 않든 대한민국 법이 정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것이지 국가에 죄를 지어 벌금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은 다양한 나랏일에 여러 모양으로 쓰일 것이고 그중엔 육아 지원이나 우리 엄마가 받는 노인복지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이를 낳았어도 동일하게 시행되어야 하는 정책들이다. 당연히 내가 세금을 낸다고 불효를, 싱글의 삶이 정말 불효인가는 사적인 영역으로 두자, 나의 경우 옳고 그름을 떠나 엄마에게 근심 한 덩이를 안긴 불효, 덜 수도 없다.


회사의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결혼과 출산이 의무가 아니듯 강제로 포기되어서도 안 된다. 아이를 갖겠다는 결정에 전혀 고려되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일과 아이, 둘 중 하나로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회사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씩이라도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이 개선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니 워킹맘, 워킹대디들은 특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억울할 게 아니다.


그리고 결혼과 출산은 의무가 아니니 당연히 관련하여 그 누구도 나에게 따져 물을 수 없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조언도 될 수 없다. 인구 감소가 걱정된다면 더 많은 국민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나라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은 엄연히 사적인 영역이므로 강요는 말할 것도 없고 질문조차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정갑윤 의원 말에 조성욱 후보자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청문회 자리였으므로 험한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거나 너무 어이없어 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정말 국가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나 나처럼 대신 뭐라도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 없길 바란다. 정 의원에게 마땅한 답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대신했다.


[논평] 결혼과 출산은 국가를 위한 여성의 책무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래서 작은 실수 한두 번은 무조건 꾸짖을 게 아니라 용서하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수는 돌이켜야 한다. 용서의 진짜 이유는 실수의 비율을 줄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이킴이 없으면 언젠가는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질 것이다.


그날 나의 적절치 못했던 답에 대해 돌이키는 과정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 상사도 돌이키길 바란다. 전혀 깨닫지 못했다면 부디 정 의원 논란을 보고라도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상식에 어긋나는 지를 알기를 바란다. 설마 정 의원 질문에 박수를 보낸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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